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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수)

러 화생방부대 사령관, 스쿠터 폭탄에 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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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한 아파트서 폭탄 터져

러시아는 ‘우크라 테러’로 의심

조선일보

17일 러시아군 화생방(화학·생물학·방사능) 방호군 사령관 이고리 키릴로프 중장이 숨을 거둔 모스크바 폭발 사고 현장에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키릴로프 중장이 아파트를 나서는 순간 근처의 전기 스쿠터가 폭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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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군의 화생방(화학·생물학·방사능) 방호군 사령관인 이고르 키릴로프(54) 중장이 17일 아침 모스크바에서 폭발 사고로 숨졌다고 러시아 관영 매체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키릴로프 중장은 우크라이나 정부에 ‘전쟁범죄자’로 지목돼 기소된 인물이다. 러시아 당국은 여러 정황을 근거로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이 테러를 벌였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의해 암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군 고위 간부는 10여 명에 이른다.

관영 타스통신은 이날 “키릴로프 중장은 아침 일찍 모스크바 랴잔스키 대로 인근의 아파트에서 보좌관과 함께 길을 나서던 중이었다”며 “그가 막 건물 현관을 나서는 순간, 근처에 놓여 있던 전기 스쿠터가 키릴로프 쪽으로 폭발했다”고 전했다. 키릴로프와 보좌관은 폭발물의 파편에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조사에 따르면, 전기 스쿠터에는 약 0.3㎏의 TNT(트리니트로톨루엔) 위력에 해당하는 소형 폭발물이 설치돼 있었다. 타스통신은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이 폭발물은 정확히 목표물 방향으로 터지도록 정교하게 설계돼 있었다”며 “휴대폰이나 무선 조종 장치를 이용, 원격 격발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러시아 정부는 즉시 사건조사위원회를 꾸려 수사에 나섰다. 아직 폭발 사건의 원인과 배후가 지목되지는 않은 상황이다. 러시아 매체들은 그러나 “조사위원회엔 모스크바 ‘국제범죄조사국’이 주도하고, 연방보안국(FSB)도 참여하고 있다”며 당국이 ‘외국 세력에 의한 암살 테러’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배후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은 침묵하고 있다. 로이터와 AFP는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우크라이나 측이 폭탄을 설치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매체들도 잇따라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이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이고르 키릴로프 중장을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검찰은 전날 국제법상 금지된 화학무기를 사용한 혐의로 키릴로프 중장을 기소했다. 그가 러시아군에 독성 물질이 들어간 포탄과 수류탄을 지속적으로 지급해 4800회 이상 사용토록 했고,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군 사상자가 2000명 이상 발생했다는 이유다. 미국과 영국도 이를 확인하고 키릴로프 중장을 개인 제재 명단에 올렸다. 미국 국무부는 당시 “러시아군이 ‘클로로피크린’이 들어간 무기를 사용해 1993년 화학무기 협약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클로로피크린은 1차 세계대전 때 화학무기로 개발돼 강한 최루 작용을 하며 현재도 살충제 등으로 쓰인다.

키릴로프 중장은 우크라이나가 자국 내 러시아계 주민을 박해한다고 주장하는 보고서를 통해 우크라이나 침공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2022년 3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의 지시로 우크라이나 영토에 30개 이상의 생물학 무기 실험실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제와 백신을 시험한다며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의 혈청 샘플 수천 개가 수집돼 ‘월터 리드 미군의료센터’로 보내졌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이고르 키릴로프 러시아 화생방 방호군 사령관(오른쪽)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침공에 핵심 역할을 한 러시아군 고위 간부가 각종 사고로 사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6일에는 러시아 점령지 포로수용소 소장인 세르게이 옙시우코프가 차량 폭발로 숨졌다. 그는 우크라이나 포로들을 대상으로 고문과 학대를 일삼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에는 무인기(드론) 훈련 부대장인 알렉세이 콜로메이체프가 모스크바주 콜롬나시에서, 이달 12일엔 모스크바 인근에서 러시아 미사일 개발 책임자인 미하일 샤츠키가 총을 맞고 숨졌다.

지난해 7월에는 러시아 해군 잠수함 사령관인 스타니슬라브 르지츠키 사령관이 조깅 중 총격으로, 올해 11월에는 러시아 해군 미사일 부대 사령관인 발레스 트란콥스키가 차량 폭발 사고로 숨졌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겨냥한 미사일 공격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트란스콥스키의 사망 사건은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이 직접 배후임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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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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