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
2003년 4월 초, 영국군이 이라크 남부 바스라에 있는 사담 후세인의 별궁(別宮)에 들이닥쳤다. 아라베스크 무늬로 장식된 대리석 궁전에서 이들을 맞이한 것은 ‘황금빛 화장실’이었다. 변기, 비데, 세면대의 밑단과 수도꼭지 등이 모두 금도금돼 있었다. 비슷한 시기, 바그다드의 대통령궁을 점령한 미군은 화장실에서 금을 입힌 청소용 솔을 찾아냈다. ‘황금 변기 솔’은 후세인의 사치와 약 400억달러의 해외 은닉 재산을 상징하는 물건이 됐다.
▶2010~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로 중동·북아프리카의 독재 정권이 줄줄이 무너지자, 스위스가 갑자기 바빠졌다. 튀니지의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등이 몰락하자 스위스에 맡겨 놓은 이들의 재산을 본국에 반환하라는 요구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이들 독재자 중에는 카다피의 해외 은닉 재산이 가장 많았는데, 현금·보석·부동산 등을 합쳐 1000억~2000억달러로 추정됐다.
▶카다피의 황금 사랑은 후세인을 능가했다. 자신이 ‘왕 중의 왕’이라며 황금관을 쓰고 황금 지팡이를 들었다. 황금 파리채를 쓰고, 다이아몬드가 박힌 황금 권총을 자랑했다. 최후에는 그 권총을 빼앗아 든 시민군의 손에 죽었다. 카다피가 여기저기에 금괴와 보석을 숨겨 뒀다는 소문이 있어, 사후 10년이 지나도록 이를 추적하는 ‘금괴 사냥꾼’도 있었다.
▶부자(父子) 세습으로 시리아를 53년간 통치했던 알아사드 가문이 축출된 후, 국제사회가 최대 17조원으로 추정되는 그들의 재산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가족과 함께 러시아로 도피한 바샤르 알아사드 전 대통령은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일반 승용차를 몰며 검소한 척했다. 하지만 그가 떠난 대통령궁에서는 페라리·람보르기니·롤스로이스 같은 최고급 차량과 고가의 명품이 쏟아져 나왔다.
▶전혀 반대의 경우도 있다. 1960년 하야한 이승만 대통령은 하와이 교민들의 도움을 받아 생활했다. 곤궁한 형편에 이발비 5달러를 아끼려고 머리 손질도 집에서 했다. 손님은 아내 프란체스카 여사가 가루 주스를 물에 타서 대접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스위스 비밀 계좌에 거액을 은닉해 뒀다는 소문이 돌았다. 몇 해 전 민주당의 한 정치인이 “박정희의 통치 자금이 300조”라며 이를 찾아내겠다고 했다. 그런 자금이 있다고 그 사람도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한국의 기적은 저절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김진명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