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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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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비상계엄 선포로 소환된 영화가 있다. 지난해 11월 개봉해 극장에서만 1,312만 명이 본 ‘서울의 봄’이다. 1979년 12월 12일 벌어진 신군부 쿠데타를 소재로 한 영화 속 내용이 현실과 흡사해서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라는 전두광(황정민)의 대사에서 반역을 내란으로 바꾸면 비상계엄이라는 공포가 현실로 느껴진다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지난 3일을 ‘서울의 봄’에 빗대 ’서울의 밤’이라 많은 이가 칭하는 이유일 것이다.
□ 지난 14일 국회 탄핵안 가결로 윤석열 대통령 직무 정지가 이뤄지자 미국 드라마 ‘지정 생존자’ 시리즈(2016~2019)가 언급된다. 지정 생존자(Designed Survivor)는 미 행정부 용어다. 대통령이 연초 의회에서 국정 연설을 할 때 장관 1명은 참석하지 않고 반드시 공개되지 않은 다른 곳에 있어야 한다. 무작위로 선정되는 그 장관을 지정 생존자라 한다. 대통령과 부통령 등이 적의 공격이나 사고로 모두 사망할 경우 국정 마비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다.
□ ‘지정 생존자’는 한덕수 총리가 대통령 직무를 대신 수행하게 되면서 새삼 화제가 됐다. 한국은 총리를 시작으로 대통령 직무 승계 서열이 정해져 있기는 하나 지정 생존자 제도는 없다. 정치 과몰입의 시기,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시리즈(2013~2018)는 정치의 비정함과 정치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할 만하다. 권력욕으로 맺어진 부부 프랜시스(케빈 스페이시)와 클레어(로빈 라이트)가 최고 권력을 손에 넣기까지 벌이는 협잡과 권모술수가 화면을 채운다.
□ 프랜시스와 클레어는 처음에는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종국에는 살아남기 위해 더 큰 권력을 탐한다. 프랜시스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시작한 정치는 생존 방편으로 조금씩 변질된다. 프랜시스와 클레어의 권력이 커질수록 죽어 나가는 사람 수는 늘어난다. 잘못된 정치의 폐해를 은유하는 대목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말 그대로 카드로 지은 집이다. 언제 무너질지 모를 집이다. 우리 옛 표현으로는 사상누각이다. 국민이 빠진 정치는 토대 없는 집과 같다. 왜 정치를 하는가 묻고 싶은 요즘이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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