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인권운동가 "억압 체제 강화" 비판
정부, 2년 전 '히잡 반대' 시위 재발 우려해
이란의 한 여대생(오른쪽)이 정부의 히잡 미착용 단속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속옷 차림으로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엑스(X·옛 트위터)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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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히잡 착용 의무를 위반한 여성을 징역형에 처하도록 한 '히잡과 순결 법'의 시행이 일단 보류됐다. 법 시행일을 불과 엿새 앞두고 내려진 결정으로, 이란 안팎에서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16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과 이란인터내셔널 등에 따르면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NSC)는 지난 13일 의회에 서한을 보내 "정부가 개정안을 제출할 수 있도록 '히잡과 순결 법'의 시행 절차를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초 오는 20일로 정해져 있던 법의 발효 시점을 당분간 미룬 것이다.
여성의 복장 규제를 대폭 강화한 히잡과 순결 법은 인권운동가들로부터 "억압 체제를 강화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성인 여성은 물론 어린 소녀까지 머리카락이나 팔뚝, 다리 등을 노출할 경우 최대 10년의 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재범자나 규정을 조롱하는 사람은 무거운 벌금형 또는 최대 15년의 징역형에 처해지며, 기업에도 '규칙 위반자 신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의회를 통과한 뒤 이달 1일 의회 내 강경파로 구성된 수호위원회(헌법·이슬람 율법 준수 여부 조사 기구)에서도 승인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의 서명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그러나 페제시키안 대통령을 비롯한 '온건파'가 막판에 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법안 내용이 모호하고, 수정이 필요하다"며 재검토 의사를 밝혔다. 그는 지난 7월 대선 후보 시절에도 '히잡 문제를 포함, 여성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정부의 통제에 불만을 가진 젊은 층의 지지를 받았다. 여성과 가족 문제를 담당했던 마수메 에브테카르 전 부통령도 "이란 인구 절반을 기소하는 것"이라며 이 법을 비판한 바 있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2년 전의 대규모 '히잡 반대' 시위 사태가 재발할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22년 9월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당시 22세)가 복장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구금됐다가 의문사하자, 이란 전역에서는 격렬한 항의 시위가 이어졌다. 최근에도 이란의 인기 가수 파라스토 아흐마디가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채, 관객 없는 유튜브 콘서트를 진행했다가 체포되면서 또다시 논란이 제기됐다.
나주예 기자 juy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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