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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7 (화)

[기억할 오늘] 바다로 사라진 호주 현직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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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7 해럴드 홀트
한국일보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한 채 낚시용 작살을 든 해럴드 홀트. National Archives of 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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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제17대 총리 해럴드 홀트(Harold Holt, 1908~1967)가 1967년 12월 17일 정오 무렵 빅토리아주 포트시(Portsea) 셰비엇(Cheviot) 해안에서 수영 도중 실종됐다. “호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수색 작전”에도 불구하고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았고, 닷새 뒤 멜버른 성바오로 대성당에서 성대한 장례식이 치러졌다. 현직 국가수반의 기이한 실종-죽음은 숱한 소문과 의혹을 낳았다.

해양 스포츠에 대한 호주인들의 자부심은 가히 민족정서라 할 만큼 유별나다. 홀트도 예외가 아니었다. 시드니 교외에서 태어나 멜버른에서 성장한 홀트는 퀸스칼리지 법학부 재학 시절 크리켓과 풋볼 대표팀에서 활약한 만능 스포츠인으로, 54년 작살낚시를 익힌 뒤 연중 잠수 장비를 챙겨 다니며 틈만 나면 다이빙과 스노클링을 즐겼다. 변호사와 로비스트로 일하다 정계에 입문한 뒤 27세에 연방 하원의원이 된 그는 여러 부처 장관을 거쳐 총리가 됐고, 재임 중 베트남전 참전으로 시민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지만 야당 반발을 무릅쓰며 백호주의를 철폐하고 10진법을 도입하고 화폐를 개혁(호주 파운드→호주 달러)해 큰 호응을 얻었다.

시민과의 접촉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개인 경호를 거부하다가 두 차례 암살 위기를 겪은 뒤에야 단 한 명의 수행 경호원을 주중에만 허용했던 그는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직 총리가 익사하거나 상어에게 잡아먹힐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라고 일축하며 바다에 뛰어들곤 했다. 대학 시절 운동 부상으로 인한 만성 어깨 통증으로 진통제와 물리치료를 받으면서도 그 열정을 꺾지 않았다.
그는 67년 12월 14일 마지막 밤샘 내각회의를 주재한 뒤 군용기를 통해 멜버른으로 이동, 휴식을 취한 뒤 17일 바다에 뛰어들었다. 정치에 환멸을 느껴 자살했다는 설, 중국 스파이란 사실이 들통날까 두려워 중국 잠수함을 타고 밀항했다는 설 등 의혹과 음모론이 이어졌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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