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선포 그날 밤, 일상을 보내던 대전 2030 청년들은 난데없는 밤을 맞닥뜨렸다. 일상은 뒤집히고 멈췄다. 밤을 꼴딱 샌 시민들은 광장으로 모였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이후 8년 만이다. 비상계엄 선포 후 11일 만에 탄핵 가결로 일상은 회복됐지만 남은 과제는 많다. 비상계엄의 밤을 경험한 대전 2030 청년들이 모였다. “우리는 왜 비상계엄을 경험해야 했나, 탄핵 이후엔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그들에 주어진 물음표이자 과제이다.
지난 13일 대전 대덕구의 한 카페에서 대전 2030 청년들이 모여 12·3 비상계엄 선포가 내 일상에 미친 영향에 대한 경험담을 나누고 있다. 소시민클럽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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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두근거리고 현실 감각 떨어져”
윤석열 대통령 탄핵 가결 전날인 지난 13일, 대전 대덕구의 한 카페에 2030 대전청년 13명이 만났다. 이름하여 ‘천하제일 나라걱정대회(sosimin worry party)’다. 비상계엄을 경험한 그들은 하나같이 “비현실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상기씨는 “그날 밤 지인들과 대흥동에서 술을 마시다가 속보를 보게 됐다”며 “지인들에게 말했더니 모두 믿지 않더라. 그만큼 비현실적이었다”고 말하는 김씨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됐다. 김씨는 “내 평범한 일상은 파괴됐다는 생각이 0.1초만에 들었다. 잡혀갈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는 “생애 첫 비상계엄이자 굳이 경험할 이유가 없는 비상계엄이었다. 다음날 군인이 지역을 다 점령할까 우려됐다”고 했다.
육다위씨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현실 감각이 떨어졌다”고 회상했다. 육씨는 “유튜브 숏츠를 보고 일상을 즐기던 중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비상계엄이 선포됐다는 것을 알게됐다. 일상이 갑자기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비상계엄 선포 후 업무로 새벽 1시에 일을 보던 윤여진씨는 “내 미래를 걱정하던 게 꿈같다며 친구들과 대화를 했다”며 “매일 쏟아지는 뉴스를 보면서도 정리는 안되고 현실 감각도 없는 상태가 이어졌다”고 토로했다.
지난 13일 대전 대덕구의 한 카페에서 대전 2030 청년들이 모여 12·3 비상계엄 선포가 내 일상에 미친 영향에 대한 경험담을 나누고 있다. 소시민클럽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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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대화 온라인 모임 중 계엄 소식을 듣게 된 이설씨도 “영화에서나 보던 것이라 현실이 맞는지 구분이 안됐다”고 말했다. 송진명씨는 “인터넷 밈이라고 생각했다. 당일엔 자고 있어서 몰랐다. 다음날까지 늦잠을 자서 상황이 지나고 알게 됐다”며 “현실에 와닿지 않았다. 비상계엄 해제로 정상 출근해서 평상시와 같이 일하는데 이질감이 들었다”고 했다.
비상계엄 선포가 정치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라혁주씨는 “컴퓨터로 친구들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채팅하다 뉴스 속보로 알게됐다”며 “인터넷 서버 다운 경험이 있었기에 증시 등 나라 경제에 우려가 있었다. 이번 사태로 정치에 관심이 없는 친구들조차 이런 일이 대체 왜 일어났는지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최홍주씨도 “전역하지 않은 동생이 걱정돼 잠에 들지 못했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 정지에 대한 필요를 느꼈다. 정치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조은우씨는 “집에서 휴대폰게임하다 남동생과 아버지가 말해줘서 알게됐다”며 “평소엔 정치에 관심이 없는데, 계엄 해제 전까지 유튜브 라이브를 보느라 밤을 꼴딱 샜다. 과거 광주 민주화항쟁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날을 ‘내란의 밤’이라고 정의했다. 내란의 밤은 그들의 일상을 흔들었다. 언론·결사·집회의 자유를 새삼 체감하는 듯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다.
배은열씨는 “퇴사 후 백수 이틀째에 친구들과 영화보다 친구의 전화로 알게됐다”며 “정치적 발언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박근혜 탄핵 이후로 바뀐 게 없어서 걱정이다. 지금 해야 할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창원씨는 “대통령 취임 후 선서가 떠올랐다. 윤석열은 법을 ‘망나니 칼’처럼 쓴다. 방패처럼 써야 할 헌법과 법리를 칼처럼 쓰는 게 위험하다고 느꼈다. 빨리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권인호 소시민클럽 모임장은 “비상계엄 선포처럼 느닷없이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내 곁에 누가 있나,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 13일 대전 대덕구의 한 카페에서 대전 2030 청년들이 모여 12·3 비상계엄 선포가 내 일상에 미친 영향에 대한 경험담을 나누고 있다. 소시민클럽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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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이후 우리는…치열하게 꿈꿔야 만나는 세계
탄핵 후 그들이 바라는 사회는 어떨까. 집회 속 소수자성, 인터넷 커뮤니티의 극단성, 광장의 역사 등으로 주제가 바뀌면서 이야기는 세대별 시선으로 흘렀다. 정치개혁에 대한 담론도 수면 위로 올라왔다.
권인호 모임장은 “탄핵이나 개헌 같은 정치개혁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며 “지금의 탄핵정국이 가져온 시사점은 무엇이고, 거리로 나온 2030 여성들은 왜 항상 광장에 있었는지, 사회문제에 대한 연대는 왜 필요한지 이번에 확실히 알게됐다”고 했다.
권 모임장은 광장에 2030 여성들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K(케이)-팝을 전세계로 이끈 건 좋은 노래도 있지만 팬클럽 문화다. 그런 연대 의식이 투쟁 집회와 결합되면서 광장에 계속 존재해온 것 같다”며 “비상계엄 선포 때 특전사와 경찰 등의 국회 침탈, 폭력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성들은 그동안 가부장제와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시위 문화에서 정점을 찍은 것이 아닐까”라고 진단했다.
윤여진씨는 “남성은 왜 광장에 소극적일까, 추측컨대 20대 남성이 보수의 지지층이라, 윤석열을 뽑은 사람은 나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투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세대이자, 성별”이라고 짚었다.
최홍주씨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의 극단적인 의견 분열과 개인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연대해 본 경험이 없고 자기 자신의 안위가 우선순위이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지난 13일 대전 대덕구의 한 카페에서 대전 2030 청년들이 모여 12·3 비상계엄 선포가 내 일상에 미친 영향에 대한 경험담을 나누고 있다. 소시민클럽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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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씨는 “소수자 혐오와 배제가 윤석열이란 괴물을 탄생시켰다”며 “소수자성에 대해 공론장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김상기씨는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이 있으면 정치를 해야 한다”며 참여의 정치를 강조했다.
권인호 모임장은 “정치 개혁이 핵심적인 이슈가 돼야 한다”며 “익숙하지 않은 것들, 연대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파편화하는 것을 바꾸기 위해 제도권 정치 참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 모임장은 “‘천하제일 나라걱정대회’는 단순한 토론의 장을 넘어, 사회적 변화와 정치 개혁을 위한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희망을 주었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이러한 논의가 계속 이어져, 탄핵정국 이후에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공동의 노력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소시민클럽은 19일 오전 대전 중구에서 ‘이웃 시국 수다대회 ‘탄핵을 넘어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를 마련한다.
대전=강은선 기자 groov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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