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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7 (화)

[인류학자 전경수의 세상속으로] 즉흥과 예측불가는 한 뿌리, 계엄령의 한국문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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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진도씻김굿의 '넋건지기' 중 '청신' 장면. 당골네가 소리를 하고, 피리·아쟁·꽹과리를 연주하는 고인들이 간간이 바라지를 한다. 전경수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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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 '국화와 칼'의 내용이 대학입시의 문제에도 등장한 적이 있었다. 저자는 루스 베네딕트라는 미모의 미국 인류학자. 제2차 세계대전 중 그녀는 국무성의 전시정보국(OWI) 요원으로 일본에 대한 정보보고서를 작성했고, 그 보고서의 표지만 바꾸어서 출판했다. 일본에 가보지도 않았던 베네딕트 교수의 명저이자 베스트셀러 대열에도 올랐다. 이 책의 이론적 배경이 되는 선행 서적이 '문화의 유형'이다. 구성주의라는 이론으로 등장하면서 유형(pattern)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책이다. '국화와 칼'에는 '국화'와 '칼'이 집중적으로 논의된 구석은 하나도 없고, 그 책에 대한 반론으로 10년 뒤에 등장한 프랑스 사회학자의 서적은 '국화도 없고, 칼도 없다(Without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라는 제목이었다. 어떻든 유형론은 지금도 선호되는 문화분석의 이론이다. 한국문화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여러 선학들이 선호했던 개념이었다. 유형론으로 작금의 계엄령 사태를 어떻게 설명할까?

샤머니즘에 심취한 세상의 인류학자들이 한국에 주목했다. 무당굿이 가장 성했던 곳이 이 땅이었고, 지금도 진행형이며,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 제정일치의 원시문화 유산으로 이해되었고, 조선 팔도 동네마다 굿도 많았다. 그 많은 굿들 중에서 진도 씻김굿이 가장 뛰어나다는 점에는 연구자들 사이에 이론이 없다.

무당인 당골네가 사설풀이의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다루는 고인들이 피리와 아쟁과 장구를 연주한다. 여기까지는 조선 굿의 공통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굿판은 오케스트라의 형식을 갖추었다. 소리는 무당만이 하는 것인데, 진도 씻김굿에는 고인들의 소리가 합세한다. 당골네의 노래 소리에 간간이 옆으로 끼어드는 고인들의 소리가 ‘바라지’다. 그 소리가 추임새 정도로 살짝 끼어드는 것이 아니라 당골네의 소리를 넘어가는 고음이다. 당골네의 소리와 바라지가 한덩어리로 꼬여서 들린다. 환언하면, 바라지가 없는 씻김굿은 굿판 맛이 없다.

바라지는 진도씻김굿에 유일하다. 서양식 오케스트라의 연주 도중에 악사들이 악보에 없는 소리를 지른다고 생각하면 된다. 바라지 소리가 굿판의 구경꾼들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는 동인이라고 생각하면, 바라지가 즉흥의 표현이라는 주장에 수긍이 간다. 바라지는 일정한 형식도 없고, 당골네의 소리 도중에 제3자가 ‘괴상하게’ 질러대는 소리다. 나는 바라지라는 단어가 오랜 연원의 토속어이며, 즉흥이라는 한자어가 정착하기 이전에 진도와 전라도에서 사용되었던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씻김굿판에 잔존하고 있는 것이다.

바라지 덕분에 씻김굿판은 구경꾼과 연행자가 한덩어리로 승화한다. K팝 성공의 핵심 요소가 바라지의 인자인 즉흥에 있다. 이 세상의 어떤 팝도 따라오지 못하는 요소로서의 즉흥을 말한다. 악기를 배경으로 가무가 연행되는 형식이라는 점에서 전세계가 공유하는 장르로 안착한 K팝은 연행자와 관객이 하나가 되는 커뮤니타스(communitas)를 창출한다. 그 동인이 즉흥이다. 즉흥의 특징은 예측불가(豫測不可)다. AI가 즉흥을 따라오려면 한창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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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앞둔 1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K팝을 '떼창'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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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민주국가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렸다. 세계가 이구동성으로 놀라는 반응은 '예측불가'의 한마디다. 절차가 중요한 헌법과 법률의 시스템을 갖춘 경제대국 대한민국에서 군대를 동원한 계엄령에 세계가 아연실색하면서 동시에 “그러면 그렇지!”라고 무릎을 치는 이유는 한국에서 발견되는 유형으로서의 예측불가 현상이다. 외국 원수의 방한 예정이 취소되고, 국빈이 발길을 돌리고, 관광객이 외면하는 이유는 예측불가에 따른 두려움이다. 앞으로 수사과정에서 예측불가의 정도는 점입가경과 해괴성의 드라마로 연출될 것이다. 언론이란 이름의 유언비어도 덩달아 날 뛸 것이고. 그것은 한국이라는 사회를 이해하는 하나의 문화유형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예불문화(豫不文化)라고 부르기로 했다. 예단불가와 예견불가를 다 포함한다. 예불문화의 배경은 사회적 불확실성이고, 그렇기 때문에 민심을 움직이는 신앙과 관련된 주술적 현상들이 전개된다. 무당과 점쟁이의 굿판이 성행하고, 불교도 굿판으로 진행되고, 기독교도 굿판으로 성공하는 양상을 보인다.

얼마 전에 나는 이 지면을 통해 '통계는 미니스커트다'라고 설파했다. 통계를 근거로 사회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많이 보여 주어야 한다. 사회과학이라는 것이 통계에만 의존하는 경향을 비판적으로 보기 위하여, 많이 보여 준다는 점에서 통계는 미니스커트라는 은유를 사용했다. 통계는 예측가능한 경향의 추적을 목표로 하는데, 예불문화에는 통계가 무용지물이 된다. 통계가 중요시하는 대표성이 의미를 상실한다. 대표성의 자리를 대체하는 문제가 전형성이다. 통계상 의미는 없지만, 현상 전체에는 크나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전형성이며, 그것이 베네딕트가 제시한 문화의 유형이다. 문학과 예술의 세계에 적응된 직관과 역사적 경험이 축적된 방법론이다.

굿판에 뿌리를 둔 즉흥이 K팝으로 대박을 쳤지만, 그것이 한국은행에서 통할 리가 없고, 병원 시스템에 적용될 리가 없다. 21세기의 한국이 경제대국의 모습을 갖추었다는 것은 그만큼 예측가능한 사회가 되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계엄령이라는 발상과 실패의 원인은 통계적으로 검증된 현상들의 계산된 조직력이 아니라 즉흥이 통하는 비선(秘線)에 의존했다는 사실이다. 즉흥 성공의 입지가 그만큼 좁아진 것이 현재의 민주국가 대한민국이라는 점이 역으로 증명된 셈이다. 예측가능한 사회를 무산시키는 즉흥의 힘이 어지러운 세상의 원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흥과 예불이 한국문화의 유형으로 이해되기를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계엄령을 행사한 대통령에 맞서서 민주주의를 향한 한국인들의 열망은 광장에서의 즉흥을 보여준다. 증시와 환율의 널뛰기도 즉흥의 결과다. 즉흥과 즉흥이 충돌하는 현장이 엎치락뒤치락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서울의 밤을 보면서, 진정한 한국적 민주주의의 먼동을 기약한다. “하늘이 무너지면, 더 큰 하늘이 열린다”. 계엄령의 위기가 강소국(强小國)의 기회다. 새벽닭과 들닭이 함께 울어야 새날이 밝아온다. 민주주의의 고점을 향한 팔부능선에서 생각하는 문제는 바라지의 즉흥과 예측가능한 경제가 공존하는 한국적 정치판의 창출이다. 세상이 보고 있다. 한국문화의 숙명적 도전 과제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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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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