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동짓날이면 홈리스행동은 서울에서 사망한 거리 홈리스, 쪽방·여관·시설 등지에서 숨진 무연고자를 기리는 추모제를 연다. 올해도 추모제를 앞두고 망자의 이름을 단 장미를 모아 추모 자리를 꾸렸다. 그곳에 있는 이름들을 유심히 살피던 한 남자가 물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장례를 못 치른 건가요? 무연고 사망자의 경우 공영장례가 열린다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가족이 있는 경우에도 그렇게 해주나요? 가족이 있더라도 시신 인수를 거절하면 그럴 수 있습니다, 답했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질문을 고쳐 묻던 그의 사연은 이랬다.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다. 혼인신고는 안 했지만 서로를 부부처럼 생각했다. 쪽방에 살던 그가 사망한 후 경찰은 시신은 가족에게만 인계할 수 있으니 연락을 기다리라 말했다. 가족 연락처를 갖고 있던 그는 가족에게 연락해 장례를 꼭 치러달라 부탁하고 돈도 조금 보냈다. 그리고 끝이었다. 지난 여름 세상을 떠난 정인의 이름을 다시 발견한 것은 겨울의 서울역, 무연고 사망자의 이름들 사이였다.
가족들도 경제적으로 어려워 장례를 포기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영장례지만 예우를 갖춰 나름 정성껏 진행된다, 12월20일 추모제가 있으니 또 마음 모아주시라, 황급히 몇 마디를 보태 보았지만, 그의 상실에 마땅한 위로는 결코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하고는 황급히 돌아서는 그의 등 뒤로 틀어막지 못한 울음이 터졌다.
전국 많은 지자체에 공영장례 제도가 생겼지만, 이 제도는 여전히 고인을 추모하고자 하는 ‘연고자’에게 불친절하고, 뿌리 깊은 가족주의가 이를 뒷받침한다. 지인들에게 잘 닿지 않는 장례 부고처럼 행정의 무심한 응대나, ‘효율’을 위해 10년이던 봉안 기간을 5년으로 단축하는 일방적인 변화가 누군가에게 두 번째 상실을 안겨준다.
지난 목요일, 나는 한 홈리스에게 세상을 떠난 동료를 추모하는 말 한마디 나눠달라 부탁했다. 그는 말했다. 노 선생님들(노숙인 여러분), 우리 절대 길에서만큼은 죽지 맙시다. 추모라기엔 요청이고, 요청이라기엔 결심인 말이었다. 과거가 현재를,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을까. 가난한 이들의 죽음 역시 이를 묻고 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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