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하 논설위원 |
어제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는 ‘확신범’의 면모를 선명히 드러냈다. 내용 자체는 취임 후 한 담화 중에 가장 명료했다. 거대 야당의 횡포를 격렬히 비난하는 대목은 동의할 국민도 꽤 있을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갑자기 비상계엄으로 급발진한 과정은 도무지 합리적으로 납득하기가 힘들다.
국회에 병력을 보낸 데 대해 윤 대통령은 “국회를 마비시키려 한 게 아니라 거대 야당의 망국적 행태를 상징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라고 해명했다. 군 투입이 애들 장난인가. 한국 사회에서 군의 정치 개입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은 생각도 안 해 봤나. 윤 대통령의 정신세계가 왜 이렇게 됐을까. 이번 사태는 그의 세 가지 중독 때문에 발생한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12월 1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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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권력 중독이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한 번 찍은 표적은 어떻게든 구속하는 칼잡이로 유명했다. 거물급을 줄줄이 잡아넣으면서 그는 자신의 검사 권력에 대한 강한 확신이 생겼을 것이다. 내가 마음먹으면 제압하지 못할 대상이 없다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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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중독, 영장 청구하듯 비상계엄
유튜브 중독, 음모론 신봉 망상으로
알코올 중독, 쉽게 격노 판단력 저하
뇌신경학자 이언 로버트슨에 따르면 권력감은 도파민(행복감을 주는 신경전달물질) 분비를 촉진해 뇌의 중독 중추를 활성화한다고 한다. 로버트슨은 “권력은 코카인과 같은 작용을 한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않고 오만하게 만든다. 권력은 시야를 좁게 만든다”(『승자의 뇌』)고 지적했다.
권력에 깊이 중독된 윤 대통령은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그래서 토론도 없이 무작정 청와대를 옮겼고, 껄끄러운 여당 대표를 내쫓았고, 대책도 없이 의대 정원을 2000명이나 늘렸다. 그런데 지난 4월 총선 참패 후 거대 야당이 사사건건 자신의 권력 행사를 방해하니 울화가 쌓여 폭발 지경이 된 듯하다. 권력 중독자에게 대화와 타협은 머릿속에 없는 개념이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를 흔한 구속영장 청구 정도로 인식했을 것이다. 군 병력을 동원해 ‘범죄자’가 이끄는 야당을 제압하겠다는 발상은 권력 중독의 종착점이었다.
둘째는 유튜브 중독이다. 윤 대통령은 신문ㆍ방송보다 유튜브에 심취했다. 윤 대통령이 측근들에게 직접 특정 유튜브 채널을 추천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구독자 수에 목을 매는 유튜브는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제한적 시청층을 대상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자극ㆍ편파적이고 검증 안 된 불량 콘텐트가 난무한다.
12월 3일 밤 계엄령 선포 당시 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된 계엄군이 선관위 시스템 서버를 촬영하는 장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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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이 즐겨 보는 것으로 알려진 몇몇 우파 채널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는 그만이었을 것이다. 맨날 신문ㆍ방송은 국정 운영의 문제점을 꼬치꼬치 따지지만, 유튜브에선 이 모든 게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종북ㆍ반국가 세력의 음모 때문이라고 시원하게 정리해 주니 얼마나 듣기가 편한가.
유튜브에 중독되면 음모론이 지배하는 망상의 세계에 빠진다. 이번에 계엄 선포 직후 계엄군이 선관위에 진입해 서버 확보에 나선 것은 윤 대통령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얼마나 신봉했는지 보여준다. 그는 어제 담화에서도 선관위에 대한 강한 의심을 장황하게 표출했다. 그가 2022년 김진표 국회의장을 만났을 때 이태원 참사에 대해 “특정 세력에 의해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대목도 새삼스럽다. 윤 대통령은 유튜브를 너무 많이 봤다.
셋째는 알코올 중독이다. 윤 대통령은 수십 년간 폭음을 해왔다. 술은 뇌의 전두엽을 망가뜨린다. 전두엽은 충동을 억제하고 이성적 판단을 담당하는 부위다. 술 때문에 전두엽 기능이 저하되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툭하면 흥분하고 격노한다. 나중에 증상이 심해지면 술을 안 마신 상태에서도 그렇게 된다.
윤 대통령은 진작에 알코올 중독 상담을 받았어야 했다. 그랬으면 계엄 선포와 같은 비극적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술로 인한 판단력 저하가 자신의 인생과 정권을 파멸로 몰고 갔다. 쓰고 나니 뜨끔하다. 새해부턴 술을 줄여야겠다.
김정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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