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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금)

[주정완의 시선] ‘전공의 처단’ 포고령, 누가 작성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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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주정완 논설위원


처음엔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난데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던 지난 3일 밤의 상황이다. 이날 대통령의 말에는 시퍼렇게 날이 서려 있었다. 그는 수차례 자유민주주의를 언급했지만 진정한 의미의 자유민주주의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폭주했다. 과거 왕조 시대에나 있을 법한 무도한 폭군의 망령이 떠올랐다. 그에게 자신을 반대한 이들은 곧 반국가세력이고 척결 대상이었다. 이 순간 그는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었다.



위헌적 포고령으로 전공의 겁박

계엄사령관도, 장관도 “나 아냐”

최종 책임자 밝혀 엄중한 처벌을

계엄사령관 명의로 나온 포고령은 더욱 황당했다. 과거 못난 정치군인들의 과오를 되풀이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었다. 그런데 왠지 낯설면서도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반헌법적인 정치 활동 금지나 언론 통제는 군사정권 시절에도 참혹하게 겪었던 내용이다. 결코 동의할 순 없지만 내란 주동자의 관점에선 그렇게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포고령 5항이었다. 파업 중인 전공의가 48시간 안에 복귀하지 않으면 ‘처단’하겠다는 항목이다. 예전에도 비상계엄 선포는 있었지만, 포고령에서 특정 직역의 처단을 경고한 건 처음이다. 21세기 민주공화국에서 국가기관이 국민에게 처단이란 무시무시한 단어를 썼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도대체 누굴까. 계엄사 포고령에 전공의 처단이란 문구를 넣은 인물의 정체를 확실히 밝히고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행여라도 어물쩍 넘어가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앞으로 수사기관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다시는 이런 식으로 특정 직역을 포함해 국민을 겁박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일단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그는 직무정지 이전인 지난 5일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포고령 작성자는 자신이 아니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라고 답변했다. 박 총장은 포고령 초안을 보고 “법무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고 머뭇거렸지만 김 전 장관은 “이미 검토가 완료된 사항”이라며 발표를 재촉했다고 한다. 그 후 계엄상황실에 있던 네 명 정도가 같이 읽어보며 “어떡하냐. 어떡하냐”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거듭 재촉을 받고 급하게 발표했다는 얘기다. 다만 포고령 발표 시간만 오후 10시에서 오후 11시로 수정했다고 한다.

의료 정책을 총괄하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사전에 전혀 몰랐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지난 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출석해 “포고령 내용을 보고 매우 놀랐고, 그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공의 처단 포고령은) 기존 정부 방침과도 배치되고 9000명 넘는 전공의가 이미 사직한 것도 고려가 안 됐다”고 설명했다. 적어도 이 부분만큼은 “사직 전공의는 있어도 파업 중인 전공의는 없다”는 대한의사협회 입장과 조 장관의 설명이 거의 일치한다.

박 총장과 조 장관의 말이 맞는다면 남는 건 두 사람, 즉 김 전 장관과 윤 대통령뿐이다. 육군 대장 출신인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추론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김 의원은 지난 6일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국방부라든가 계엄사령부 등 그런 데서 (포고령을) 작성했다면 전공의가 왜 있겠느냐”며 “(처단은) 군에서도 쓰지 않는 단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에게) 가장 머리 아팠던 전공의 문제를 총칼로 풀려는 것이 5항에 나오기 때문에 이것은 대통령이 깊게 관여해서 작성한 걸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정확한 사실관계는 앞으로 윤 대통령 등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느닷없이 ‘공산 전체주의’와의 대결을 선포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에도 국민적 통합을 이끌어야 할 광복절에 대통령이 전투적 언어로 분열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제 와 돌이켜 보면 광복절 경축사의 거친 표현은 반헌법적 비상계엄의 예고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누구보다도 강력히 공산주의와 전체주의에 반대했던 인물이다. 하이에크는 1944년 출간한 『노예의 길』이란 책에서 “왜 가장 사악한 자들이 최고의 권력을 잡게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선한 사람들이 전체주의 기구의 지도적 지위를 열망할 이유는 별로 없지만, 반대로 그들이 돌아서도록 할 것들은 너무나 많다. 이에 비해 무자비하고 잔인한 사람들은 전체주의 기구에서 특별한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80년 전 하이에크의 경고를 2024년 대한민국에서 되새기게 됐다는 현실이 참담하기만 하다.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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