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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금)

[東語西話] 노리다케 공원에서 백년시간을 여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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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채 정지된 천년공간보다는 현재와 함께하는 ‘백년가게’가 훨씬 더 정감을 준다. 게다가 창업한 본래 자리까지 지킨 곳이라면 점수를 더 후하게 주기 마련이다. 원조 터전이 가지는 기(氣)까지 온전하기 때문이다. 일본 나고야(名古屋)에 있는 백년 역사의 ‘노리다케’ 공장도 그랬다. 그 편안함에 대한 기억은 노리다케 커피잔이 주던 경험치 때문일 것이다. 모셔놓는 골동품이 아니라 옛과 지금을 동시에 이어주는 생활 속의 살아있는 소품인 까닭이다.

노리다케(ノリタケ)는 나고야 서쪽 지역에 있는 동네 이름이다. 주소길 도로 표지판에 한자로 표기된 칙무(則武)라는 지명의 원문 표기가 오히려 낯설다. 어쨌거나 동네 이름이 유명 브랜드가 된 사례이다. 특별히 관광지라고 내세울 만한 것도 없는 심심한 도시인지라 12월 포근한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중심 역 주변을 제외하고는 붐비는 곳도 별로 없다. 아이가 귀한 시절인데도 두세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 나온 젊은 부부들이 꽤 많다. 어린이들의 웃음과 울음소리가 마음에 여유를 더해준다.

밋밋한 거리에서 조금 특이하다 싶은 자리에는 어김없이 핸드폰을 몇 대 켜놓고 유별난 복장과 튀는 동작으로 짧은 동영상을 찍고 있는 젊은이들도 더러 만났다. 노리다케 공장 굴뚝 앞도 마찬가지다. 담쟁이가 이끼처럼 휘감은 오래된 굴뚝이 6개 남아 있다. 그 앞에는 붉은 벽돌로 만든 옛 가마 몇 개를 그대로 보존했다. 백년 도자기 기업의 단면을 보여주는 현장이다. 수직인 높은 굴뚝과 수평인 나지막한 낡은 가마가 대비와 조화를 이루면서 나름의 미학을 연출했다.

창업주 모리무라(森村) 선생의 좌우명인 “사람은 감격(感激)에 살고 보수(保守)에 죽는다”라는 인터뷰를 국내 한 일간지에서 검색했다. 끊임없는 변화는 나와 남을 감동시키면서 계속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겠지만 현실에 안주하는 순간 그것이 바로 죽음이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백년 동안 끊임없는 변신을 추구했다. 생산 공장보다 디자인 부서를 먼저 둘 만큼 디자인이 꾸준한 변화를 주도했다.

공식적으로 1904년 창업한 후 사업 영역이 다각화되면서 나누어진 회사는 여러 지역으로 분산·이전했다. 하지만 회사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최소한의 조직은 원터에 남겼다. 동시에 백주년 사업으로 아담한 붉은 벽돌 공장 건물 몇 채를 포함한 모든 부지를 공원으로 개방해 지역사회에 환원했다. 이 공원을 ‘노리다케노모리(노리다케의 숲)’라고 명명했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숲(森·모리)이란 이름 안에 창업자 모리무라(森村)라는 이름이 겹쳐졌다. 동네 이름만 남고 창업자의 명함이 없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일까.

백년 가게의 가장 큰 매력은 과거와 현재가 함께 호흡하면서 공존하는 살아있는 공간인 까닭이다. 몇 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老鋪) 앞에서는 뭔가 가닿을 수 없는 권위에 대한 부담스러움이 있고 현재 매우 ‘핫하다’는 몇 십년 가게는 그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거둘 수 없다. 누구나 편안하고 적당하다고 여기는 시간은 딱 백년 정도인 것 같다. 나와 함께하면서도 보통 인간의 생애 주기보다 약간 더 긴 까닭에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시간까지 포함된 신비감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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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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