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2기 트럼프 행정부 출범은 대외적 불확실성을 이미 고조시키고 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 기조로 인해 내수 부진과 수출둔화가 겹쳐, 내년도 한국 경제 성장률이 더 낮아질 것이라는 예측도 줄을 이었다. 한국은행은 11월 수정경제전망을 통해, 2025년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9%로 낮췄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11월 말 기준으로 해외 주요 투자은행 8곳의 한국 경제 성장률 평균 전망치는 한 달 전 2.0%에서 1.8%로 하락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제1기 때와 마찬가지로 보편적 규칙의 제정보다는 개별 국가에 대한 압박과 제재를 통해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당장에 외교·안보 문제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바이든 행정부가 약속했던 보조금 지급 이행, 대중 봉쇄 강화에 따른 국내 기업들의 추가적 피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폐기 내지 축소에 따른 국내 기업들의 피해, 추가 관세, 주한 미군의 주둔 비용 부담 문제 등등 수많은 경제 현안이 발생할 것이 자명하다.
그런데 해외 각국 정부로부터 신뢰를 잃고 사실상 정부로서 기능을 상실한 윤석열 행정부를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협상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협상이 가능할 것이다. ‘트럼프 리스크’가 극대화된 형태로 국내 경제를 타격할 개연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런 악영향은 쏟아진 물과 같다. 이제와 도로 담을 수도 없고, 신뢰를 잃은 행정부가 나선들 해결할 수도 없다. 더구나 반헌법적 권력이양이라는 황당한 시나리오로 여당 대표와 국무총리가 나선다면, 불확실성만 더 키우고 더 오래 지속시킬 뿐이다. 신속한 국회 탄핵을 통한 대통령 권한 정지와 내란 관련자 엄중 처벌 그리고 신속한 새 정부의 출범만이 이런 불확실성과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나아가 대통령의 친위쿠테타가 정치를 위한 정치와 결별하는 계기가 된다면, 한국 경제와 정치에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수년 안에 제조업 위기와 동남권 중화학공업 산업공동화 그리고 삼성전자의 쇠락이 한국 경제를 강타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12월3일 이전처럼 야당과 정부의 대치가 남은 2년여 동안에 지속되었다면, 정치권은 오로지 ‘윤석열 퇴진’과 ‘이재명 방탄’이라는 정쟁에만 골몰했을 것이고, 다음 대선에서 누가 집권하더라도 아무 준비 없이 이런 심각한 위기를 맞았을 것이다.
추운 날씨에도 국회 앞에 모여 탄핵을 외치는 젊은이들의 목소리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갈망임을 여야 정치인들이 알아야 한다. 정치가 현실과 미래 문제를 진단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정책 경쟁으로 나아가야만, 다가올 경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시점에서 정치를 위한 정치와의 결별은 이재명 대표의 결심에 달렸다. 탄핵 이후 헌법재판소 판결이 내려지고 대선이 치러지기까지, ‘이재명 사법 리스크’가 정쟁의 핵이 될 개연성이 높다. 특히 선거법 2심과 대법원 판결이 대선 이전에 내려질지, 또 차기 대통령 당선 이후에 ‘셀프 사면’ 여부와 유죄 판결이 나오면 어떻게 할지 등이 지속적으로 정치 쟁점이 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김건희 리스크’를 안고 집권해서 벌어진 일련의 일들과 유사한 일들이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를 안고 집권할 때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미래에 대한 정책 경쟁은 설 곳을 찾을 수 없다.
대통령 탄핵이 이뤄지면, 이 대표는 차기 대선에는 출마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려줄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 본인이 억울하다면, 향후 사법절차를 통해 소명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정치를 하는 이유가 국민의 행복과 미래를 위한 것이라면, 정치 지도자로서 자기희생을 통해 정치를 위한 정치를 청산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대표가 이런 결단을 하면, 이념적 성향을 떠나 우리 국민 모두가 진정으로 존경할 수 있는 정치인이 된다.
이 대표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야당은 반대할 수도 있다. 당송 8대가를 대표하는 한유가 “세상에 천리마는 늘 있다. 다만, 백락이 흔치 않을 따름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백락’은 본래 고대 중국인들이 천마를 주관한다고 여긴 신선의 이름이다. 이 대표의 결단이 한국 정치판을 백락으로 바꿀 수 있다. 천리마가 될 정치인은 이런 정치 지형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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