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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목)

尹 정부 ‘바이오 산업 육성 기구’ 올스톱… “속도 중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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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 25일 오후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2022 세계 바이오 서밋 개회식에 참석,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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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출범 초기부터 바이오산업을 반도체, 우주항공과 함께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에는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을 발표하며, 2027년까지 연 매출 1조원 이상의 블록버스터 신약 2개를 개발하고 의약품과 의료기기 수출을 두 배 늘리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로 ‘속도’가 중요한 바이오산업 육성 정책이 표류하면서 제때 추진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게다가 정치 불확실성이 증시 충격으로 이어져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자금 조달 여건만 더 팍팍해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가바이오위원회 사실상 취소

1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당초 이달에 예정된 국가바이오위원회 출범과 1차 회의 일정이 무기한 연기됐다. 추후 일정도 정해진 바 없다. 국가바이오위원회는 대통령 직속 기구다. 직접 위원장을 맡을 예정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 기로에 선 만큼, 업계는 “사실상 취소나 마찬가지”라고 입을 모았다.

국가바이오위원회는 글로벌 바이오 5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추진된 바이오 정책 컨트롤타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보건복지부·산업통상자원부가 합류하며, 민간 부위원장에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부총장이 내정됐다.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 RNA연구단장(서울대 석좌교수), 고한승 삼성전자 미래사업기획단장, 김영태 서울대병원장 등 바이오 전문가 20여 명은 민간위원으로 참여할 예정이었다. 후보 시절부터 바이오 육성을 강조해 온 만큼 대통령이 직접 핸들을 잡고 연구개발(R&D), 인허가 등 바이오 정책 전반을 심의한다는 점에서 업계의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계엄 사태로 이 모든 계획이 전면 보류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위원은 “계엄 사태로 바이오위원회 출범이 무기한 연기됐다고 연락을 받았는데, 수장도 없고 동력도 잃어 사실상 취소라고 보는 분위기”라며 “업계의 기대가 컸는데 아주 아쉽다”고 했다. 민간 부위원장을 맡은 이상엽 KAIST 부총장은 “바이오 업체들의 아쉬움이 큰 건 잘 알지만, 현재로선 나라 상황이 워낙 엄중해 이렇다 할 방법이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아 지난해 10월 닻을 올린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도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 국내 바이오헬스 산업을 육성하고, 인공지능(AI)과 나노기술 등 융합을 지원하는 민·관 합동 컨트롤타워 기능을 하는 게 목표였으나, 네 차례에 걸쳐 R&D, 전문인력 양성 등에 대해 논의가 진행됐을 뿐 결정된 건 하나도 없다.

미국은 중국 바이오 기업들을 배제하는 새로운 바이오 공급망을 구축하려고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 의회는 중국 바이오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해 생물보안법(바이오보안법)을 발의했다. 당초 예상과 다르게 연내 통과가 어려워졌으나, 내년 1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재논의할 전망이다. 미 정부·의회는 2020년 코로나19 발발 이후 바이오를 ‘안보’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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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윤종 국가안보실 3차장이 2024년 6월 4일(현지 시각)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바이오USA) 행사장의 한국관을 찾아 설명을 듣고 있다. 김현욱 안보실 경제안보비서관과 최선 대통령실 첨단바이오 비서관도 동행했다. 국가안보실 고위급 인사가 바이오 USA 박람회를 찾은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왕 차장은 6월 5일 미국, 일본, 인도, 유럽연합(EU)과 함께하는 ‘바이오제약 연합(Biopharma Coalition) 출범 회의에도 참석했다. /2024 바이오USA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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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ARPA-H·바이오펀드 제동 우려

비상계엄 사태가 기업들의 글로벌 사업 기회 확보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이번 계엄 사태로 국내외 투자가 얼어붙어 바이오 업체들이 많이 위축됐다”며 “당장 다음 달 미국에서 열리는 새해 첫 국제 행사인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 참가를 포기하는 기업들도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 부처를 아예 빼고 산업계와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바이오 정책 추진 논의 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일부 논의도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규 부회장은 “철저히 산업계 의견을 한데 모아 정부에 전달하는 창구를 고민하고 있다”며 “현재 내부에서 논의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정부가 출자해 기업들에 직접 자금을 수혈하는 ‘K바이오·백신 펀드’도 난항이 예상된다. 이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임상시험, R&D, 글로벌 시장 진출, 인수합병(M&A) 자금 투자를 활성화할 목적으로 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으로, 투자 유치가 어려운 영세 기업에는 유일한 자금 창구였다.

국내 연구자와 스티트업들의 R&D 추진에도 불똥이 튀었다. 전날 야당이 주도한 감액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보건복지 분야 예산이 정부안보다 1655억원 깎였다. 그중 보건의료 난제 해결을 위한 국민 체감형 R&D 사업인 ‘한국형 ARPA-H’ 사업 예산이 정부안보다 69억원 삭감됐다.

한국형 ARPA-H는 올해부터 시작된 보건복지부의 플래그십 대형 프로젝트다. 국가가 직면한 보건 난제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비용이 많이 들고 어렵지만 파급효과가 큰 임무 중심형 R&D를 추진하는 게 목표다. 이는 미국의 혁신 R&D의 주축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보건복지부 산하 보건의료고등연구계획국(ARPA-H) 모델을 벤치마킹했다.

DARPA는 도전·혁신적 R&D의 대명사다. 코로나19 대유행 1년 만에 개발된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애플의 음성인식시스템(Siri·시리), 구글의 스트리트뷰, 스텔스 기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이 모두 DARPA의 획기적인 지원을 받아 세상에 나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의료 연구에도 적용하기 위해 2022년 ARPA-H를 설립했다. 한 해 예산이 15억달러(한화 2조1501억원)이다. 이를 모방한 한국형 ARPA-H는 무엇보다 정부 차원의 의지와 지원이 중요한 사업인데, 첫해부터 위기가 생긴 격이다.

전날 국가신약개발재단 우수과제 발표회에서 만난 한 바이오 기업 최고기술관리자(CTO)는 “국내 많은 연구자와 스타트업들이 정부 R&D 과제 수주를 통해 성장 기회를 만들어 간다”며 “R&D 정책에 관여하는 여러 주무 부처의 집행과 선정 등 세부 기능이 멈추거나 지연되면 그만큼 기업의 인력 유지 부담은 커지고 R&D가 밀려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도 뒤처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허지윤 기자(jjyy@chosunbiz.com);염현아 기자(yeo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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