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급락에 해외 구매력 ‘뚝’
슬픈 샐러드 먹으며 끼니 해결
유학·연수액 10년새 33% 감소
국외 유학생 수도 반 토막 나
슬픈 샐러드 먹으며 끼니 해결
유학·연수액 10년새 33% 감소
국외 유학생 수도 반 토막 나
비상계엄 사태를 둘러싼 정치적 불안정에 대한 자본시장의 우려가 현실화하면서 지난 9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이날 거래를 시작한 달러당 원화값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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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코로나19 때도, 2022년 고금리 사태 때도 꾸역꾸역 버텼는데 예상하지도 못한 계엄 사태에 어이가 없네요.”
미국 뉴욕주에 자녀를 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 A씨(51)는 최근 달러당 원화값이 1430원까지 급락하면서 애간장이 타고 있다. 원화값 하락으로 송금 부담이 급격히 늘어 가계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A씨는 “미국 뉴욕에서 식사 한 끼를 해결하려면 한국 돈으로 2만원가량을 부담해야 한다”며 “등록비 등 학업에 소요되는 돈도 상당해 국내 지출을 줄여야 할 판”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난데없는 계엄 사태에 원화값이 급락하면서 국외 유학생과 그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부모들이 고통받고 있다. 유학생들 사이에선 “원화가 ‘똥 휴지’가 됐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11일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지난 10일 달러당 원화값은 1433.2원에 마감했다. 현재 달러당 원화값은 고금리, 고물가 국면이던 지난 2022년 10월 25일 기록한 최저치(1436원)에 근접한 상태다.
9일 장중엔 1438.3원까지 하락하며 2년 전 저점을 잠깐 깨기도 했다. 그동안 1400원대를 기준으로 등락을 거듭하던 달러당 원화값은 이달 4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하락 압박을 받고 있다.
계엄 사태로 찾아온 고환율에 유학생 커뮤니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고충을 토로하는 유학생들이 많다. 영국에서 학사 과정을 밟고 있는 양 모씨(25)는 “달러 말고도 파운드화, 유로화 대비 원화가치도 계엄 선포 이후 급락했다”며 “당장 내년에 새 학기가 시작되는데, 학비 때문에 고민하는 지인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부분 유학생들은 한국에서 부모가 보내주는 원화로 생활비, 학비를 충당한다. 사실상 고환율 사태에 생활비가 소비력·구매력이 급감한 셈이다. A씨처럼 부모 입장에서도 자녀에게 원화로 보내던, 달러로 환전해 보내던 손실이 막심해 시름이 깊다. 해외 현지에서 다급하게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이들도 있다.
한 유학생은 SNS에 “외식은 꿈도 못 꾼다”며 “마트에서 장을 봐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는 ‘슬픈 샐러드(Sad Salad)’ 족이 되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일부 예비 유학생들은 비자 인터뷰가 연기될까 봐 불안에 떠는 것으로도 전해졌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계엄 선포 이후 경보(Alert)를 발령하고, 비자 신청자를 대상으로 한 영사 업무 일정 취소를 공지했기 때문이다. 높은 상속·증여세 부담에 미국에 투자 이민을 가려던 자산가들의 행보에도 제동이 걸렸다.
달러당 원화값이 장기적으로 하향 추세를 이어가면서, 전반적으로 국외로 유학을 떠나는 유학생들이 감소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국제수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유학·연수 지급액은 28억7010만달러로, 10년 전 수치(43억690만달러) 대비 33.4% 급감했다.
올해 1~3분기 유학·연수 지급액도 21억5310만달러에 불과하다. 계엄 사태로 인한 4분기 원화값 추가 급락을 고려하면 올해 수치도 지난해보다 더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유학생 수도 실질적으로 줄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외 유학생 수는 12만3181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10년 전인 2013년 22만7126명 대비 반 토막 수준이다.
여행객 입장에서도 고환율 사태는 난감하다. 어수선한 시국에 아예 여행을 취소하는 경우도 있다. 연말 유럽 여행을 계획 중인 이 모씨(31)는 “엔저 국면에서 ‘일본 국민은 해외여행 가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인도 마찬가지였다”며 “초기 계획보다 환전 규모를 늘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선임연구원은 “계속되는 정국 불안에 원화 약세 부담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단기적인 달러당 원화값 하단으로 1450원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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