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시상식 스웨덴서 열려
한림원 위원이 직접 한강 소개
“하양은 죽음과 슬픔의 상징
빨강은 삶이자 깊게 베인 상처”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받은 뒤 박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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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54)이 인류를 위해 공헌한 이에게 주는 가장 영예로운 문학상인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한국인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다.
10일 오후 4시(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의 명소 콘서트홀(Konserthuset)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 파란 카펫이 깔린 무대에 반원 모양으로 의자 95개가 놓였다. 객석을 기준으로 오른쪽 맨 앞에 스웨덴 왕족이 앉았다. 왼쪽 앞줄 빨간 의자에는 노벨상 수상자 11명이 일렬로 앉았다. 이 빨간 의자는 평소 스웨덴 왕족들이 콘서트홀을 찾으면 사용하는 ‘왕족용 발코니석 의자’다. 노벨상 수상자들을 위한 스웨덴 왕가의 특별 대우다. 한강은 왼쪽에서부터 여덟째 자리에 앉았다. 왼쪽부터 물리학·화학·생리학·문학·경제학상 수상자 순으로 앉았다. 뒤로는 스웨덴 왕립과학원·카롤린스카 연구소·스웨덴 한림원 등 노벨상 수여 기관 관계자들이 배석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총 1560명이 참석했다.
무대 한가운데는 알프레드 노벨의 동상이 자리했다. 노벨상은 스웨덴 과학자이자 발명가인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유언에 따라 “지난해 인류를 위해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1901년부터 시상을 시작했다. 노벨은 유언에 ‘물리학·화학·생리학·문학’ 순서로 수상 분야를 명시했다. 이에 따라 시상도 ‘노벨 순서’를 따르는 게 관례다. 노벨의 유언에 없었던 노벨경제학상은 1969년 뒤늦게 제정돼 맨 마지막 순서로 시상한다.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상 품은 한강 - 10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4년 노벨상 시상식에서 발끝까지 오는 검정 드레스를 입은 한강이 칼 구스타브 1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문학상을 받고 있다. 뒤쪽에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이 일제히 일어서 축하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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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국왕이 한강에게 ‘노벨 메달’과 증서(diploma)를 수여하기에 앞서, 스웨덴 작가이자 한림원 위원인 엘렌 맛손이 스웨덴어로 한강을 소개했다. 6~7분가량 이어진 이 소개 연설에서 맛손은 한강의 작품 세계를 흰색과 빨강, 두 색(色)에 비유했다.
“한강의 글에서는 하양과 빨강, 두 색이 만난다.”
스웨덴 작가이자 한림원 위원인 엘렌 맛손이 10일 오후 4시 40분쯤(현지 시각) 노벨상 시상식에서 한강을 소개했다. 시상식에서는 각 분야 노벨상 수여 기관 관계자가 수상자를 소개하는 연설을 한다. 시상식 이후 스톡홀름 시청사(Stadhus)로 옮겨가 연회를 하면서 각 분야 수상자의 ‘특별 감사 연설’이 이어진다. 약 1300명이 자리한 가운데 네 시간 동안 만찬과 함께 이어지는 연회에서 중간중간 오늘의 주인공들이 한마디씩 하는 것이다.
10일(현지 시각) 노벨상 시상식이 열린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 바깥 모습.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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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원 위원 엘렌 맛손의 한강 소개 전문
2021년 작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눈[雪]은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그 사이 아직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떠다니는 것들이 만나는 장소를 만듭니다. 소설은 눈보라 속에서 전개되며, 기억을 조합하는 과정에서 서술적 자아는 시간의 층을 미끄러지듯이 지나갑니다. 죽은 자들의 그림자와 상호작용하며, 그들의 지식을 배우면서요. 왜냐하면 기억한다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울지라도, 결국 지식과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벨문학상 시상식이 열린 10일,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 ‘노벨상 수상자 초상화 전시 공간’에 한강 작가의 초상화가 걸렸다. 지나가던 시민이 사진을 찍고 있다. /이태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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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강렬한 기억에서, 한 친구는 물리적인 몸이 머나먼 곳의 병실에 묶여 있음에도, 서가에서 자료 담긴 상자를 꺼내 한 문서를 찾아내고, 역사의 모자이크에 조각을 더합니다. 꿈은 현실로 넘쳐흐르고, 과거는 현재가 됩니다. 경계가 허물어지는 이러한 전환은 한강의 소설에서 반복됩니다. 인물들은 방해받지 않고 돌아다니고, 그들의 더듬이는 신호를 포착하고 해석하기 위해 양방향을 향합니다. 그들이 목격하는 것으로 인해 무너지더라도요. 마음의 평화를 대가로 치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필요한 힘을 붙잡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망각은 절대 목표일 수 없습니다.
‘누가 나를 죽였을까?’ 살해당한 남자아이의 영혼이 묻습니다. 그를 삶에 묶어두었던 얼굴의 특징들이 흐려지고 사라질 때예요. 생존자의 질문은 다릅니다. ‘나를 고통으로만 이끄는 이 몸과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고문으로 인해 단지 피 흘리는 물건이 돼버린 이 몸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그러나 몸이 포기한다 할지라도, 영혼은 끊임없이 말합니다. 영혼이 지칠 때, 몸은 계속해서 걷습니다. 우리 내면 깊은 곳에는 완고한 저항이 자리하고, 말보다 강한 고집이, 기억해야 한다는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망각은 목표가 아니고,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한국 기자들과의 회견도 예정
10일 시상식에 참석하기에 앞서 한강은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6일 세계 각국 언론을 대상으로 한 기자회견, 7일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 8일 노벨 콘서트 등 노벨위원회가 주최하는 행사만으로도 일정이 빼곡하다. 지난 8일에는 스웨덴은 물론 노르웨이, 브라질, 영국, 이탈리아 등 각국에서 온 편집자 10여 명과 점심 자리를 가졌다.
‘말괄량이 삐삐’ 린드그렌 집 찾은 한강 - 지난 8일(현지 시각) 스톡홀름에서 ‘말괄량이 삐삐’로 잘 알려진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살았던 집을 방문한 한강. 손에 든 책은 어린 시절 무척 좋아했다는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 /노벨 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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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말괄량이 삐삐’ 시리즈로 잘 알려진 스웨덴 동화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이 생전에 살았던 아파트를 찾았다. 한강은 가이드를 받아 아파트를 둘러봤고, 린드그렌의 증손자인 요한 팔름베리를 만났다. 스톡홀름에 있는 린드그렌의 아파트는 그가 1941년부터 200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주하며 ‘삐삐’ 시리즈를 비롯해 수많은 대표작을 썼던 곳이다. 2015년부터 관람객들에게 공개됐으며, 린드그렌이 살았을 때 모습에서 거의 변하지 않은 상태로 보존돼 있다.
지난 8일(현지 시각) ‘말괄량이 삐삐’ 시리즈로 유명한 스웨덴 동화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 생가를 찾은 한강. /©Nobel Prize Outreach. Nanaka Adach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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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지난 10월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직후 스웨덴 한림원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1973)을 무척 좋아했다. 그가 내 어린 시절에 영감을 준 유일한 작가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는 그 책을 인간이나 삶, 죽음에 관한 나의 질문들과 결부지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상식 이후 11일에는 한강의 작품을 출판한 스웨덴 출판사 ‘나투르 오크 쿨투르’ 건물에서 한국 기자단과 기자회견도 예정돼 있다. 12일에는 왕립 극장에서 진행하는 대담 및 낭독 행사에도 참석한다.
[스톡홀름=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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