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2 (목)

軍지휘부 마비… “6·25 이후 안보 가장 취약”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구멍 난 대한민국 안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여파로 군 수뇌부 16명이 직을 잃거나 수사 대상인 것으로 11일 나타났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자진 사퇴한 뒤 구속됐고 수도방위사령부, 특수전사령부, 방첩사령부, 정보사령부 소속 다수의 간부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대부분 대북 작전을 주도하는 핵심 부대다. 치안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와 경찰 수뇌부도 공백 상태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사퇴했고,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체포됐다. 안보·치안을 맡는 최고 책임자들의 동시다발적 부재로 국민 안위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군 관계자는 이날 “장관은 사퇴하고, 주요 사령관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일선에서는 유사시 누구의 명령에 따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많다”며 “우리 안보와 직결된 전방 지역 군 수뇌부들도 혼란스러워하는 건 마찬가지”라고 했다. 군에서는 이날 계엄사령관이었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의 직무 정지도 거론됐다. 박 총장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결론이 나지 않지만, 계엄사령관이었던 박 총장의 직무 정지는 시간문제라는 말이 나왔다.

초유의 수뇌부 부재와 함께 누가 군통수권을 행사할 것이냐는 논란까지 더해 군은 혼란 상태다. 국군통수권은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 고유 권한으로, 대통령이 탄핵당해 직무가 정지되면 총리가 권한대행으로 이런 대통령 고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7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폐기되면서 윤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지 않았고, 대통령 고유 권한도 여전히 윤 대통령이 갖고 있다. 정치적으로 무력화된 윤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군 통수권을 행사할 수는 없는 상태다. 군 안팎에서는 이 같은 상태가 지속된다면 북한의 도발 등 안보 위협에 우리 군이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왔다. 육군참모차장 출신인 여운태 원광대 석좌교수는 “대통령의 군 통수권은 불안정하고, 장관 없이 차관이 대리 근무를 하는 상황이며, 육군참모총장은 신뢰를 잃은 상태”라며 “유사시 지휘 계통에 따라 군령이 제대로 발휘될지 굉장히 의심스러운 상황이며, 6·25 전쟁 이후 가장 대비 태세가 취약해진 상태”라고 했다.

이번 사태가 군 자체 훈련은 물론 한미 연합 훈련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내년 3월 정례 한미 연합 훈련인 ‘자유의 방패(Freedom Shield)’나 한·미·일 3국 연합 훈련인 ‘프리덤 에지’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프리덤 에지는 윤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로 꼽히는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의 결실이기 때문에 준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계엄 선포 직후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도상 연습을 개최 하루 전날 무기한 연기하기도 했다. 우리 군 자체적으로는 여단급 이상 대규모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계엄 선포 이후 병력 이동으로 인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훈련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군은 일상적 병력 이동도 꺼리고 있다. 해병대 주일석 사령관은 지난 7일 작전 지도차 백령도·연평도 등 서북 도서를 방문하려다 취소했는데, 헬기 사용이 부담스럽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계엄으로 인한 외교적 불신이 유사시 안보 불안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 대사는 최근 국민의힘 고위 인사를 만나 유사시 한국군 통수권 문제 등에 대한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골드버그 대사는 계엄 당일인 3일 밤 조태열 외교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조 장관이 받지 않았다고 한다. 조 장관은 “잘못된 정세 판단과 상황 판단으로 미국을 미스리드(mislead·잘못 이끎)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동맹국인 미국조차 의심하는 상황에서 다른 국가들의 안보 협력은 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한편 이날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가 ‘윤석열 정부 사람들과는 상종을 못 하겠다’고 본국에 보고했다”는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 주장에 대해 주한 미국 대사관은 입장문을 통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utterly false)”라고 했다.

[양승식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