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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시리아 53년 세습독재”…알아사드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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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지난 2005년 3월 다마스쿠스에서 레바논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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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시리아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를 함락시킴에 따라 반세기가 넘는 알아사드 일가의 철권통치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 2011년 ‘아랍의 봄’ 때도 살아남았던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다마스쿠스를 함락시킨 반군에 밀려나 러시아 모스크바로 도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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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반군이 8일(현지시간) 수도 다마스쿠스를 함락시키고 승리를 선언하자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포스터 위를 한 남성이 짓밟으며 지나가고 있다.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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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취임한 시리아의 6대 대통령인 바샤르 알아사드는 아버지인 하페드 알아사드(1930~2000)가 사망한 직후에 대통령직을 세습받았다. 그는 반정부 인사와 반군을 전기 고문하고 성폭행하는 등 인권 탄압을 일삼기도 했으며, 민주화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반군 지역에 사린가스·염소가스 등 화학 무기를 살포하며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 일가가 ‘알아사드’라는 성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27년으로, 바샤르 알아사드의 친할아버지, 알리 아사드(1875~1963)가 ‘알와히시’이던 성을 바꾸면서부터다. 알아사드는 아랍어로 ‘사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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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아 아사드 철권통치 및 내전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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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알아사드의 아들 하페즈는 1963년 바트당이 일으킨 쿠데타에 가담해 시리아 공군 사령관을 지내면서 시리아의 권력 중심부로 들어왔다.

하페즈는 허수아비 대통령 권한대행을 세워 놓고 본인은 국무총리라는 명목으로 집권했다가 1971년 4월 대통령에 직접 취임했다. 하페즈는 런던에서 안과의사로 일하고 있던 차남 바샤르(1965~)를 불러 후계자로 삼았으며 1998년에는 시리아군의 레바논 점령작전을 맡겼다.

바샤르는 2000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대통령에 취임해 24년에 걸쳐 독재 집권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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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반군이 8일(현지시간) 수도 다마스쿠스를 점령하고 승리를 선포하자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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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일가는 경제나 국가 근대화에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사드 일가는 2011년 ‘아랍의 봄’ 사태와 맞물려 발발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한 후 내전이 시작되자 고문과 독가스 등을 사용해 자국민을 탄압했다.

그간 바샤르의 부인인 영국 태생 아스마(1975~)를 비롯, 가족과 일가친척은 시리아의 비즈니스, 은행업, 통신업, 부동산업, 해양산업을 장악해 부귀영화를 누렸다. 영부인 아스마 알아사드와 자녀 3명은 일찌감치 시리아에서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달 말 러시아로 건너갔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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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샤르 알아사드(왼쪽) 시리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알아사드 정권은 러시아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지원을 줄이자 알아사드 정권은 속수무책으로 붕괴했다. [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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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사드 대통령은 반군이 수도를 점령하기 직전 러시아 모스크바로 피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크렘린궁의 한 소식통은 8일 스푸트니크 통신에 “아사드와 그 가족이 모스크바에 도착했다”며 “러시아는 인도주의적 고려에 따라 그들에게 망명을 허가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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