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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예비비 삭감이 폭거라면 尹의 말대로 "국어사전 재정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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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덕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는 뭘까. 담화문만으로 보면 크게 두가지다. 야당이 고위공직자의 탄핵을 일삼고, 정부가 책정한 예산을 삭감해 국정 운영을 어지럽힌다는 거다. 특히 윤 대통령은 야당의 예비비 삭감을 두고도 '예산 폭거'라고 규정했다. 타당한 주장일까. 아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예비비 삭감을 예산 폭거라고 한다면, 그의 말대로 국어사전을 재정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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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의 후폭풍이 거세다. 국회의 발빠른 대처로 6시간 만에 상황이 종료하긴 했지만,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발령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국가 전반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향후 한국의 대외신인도에 커다란 타격이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비상계엄 선포가 외국(키르기스스탄)의 대통령이 방한한 상황에서 이뤄졌으니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처럼 득보다 실이 많은 비상계엄을 윤석열 대통령은 왜 선포한 걸까. 다양한 분석이 나오지만, 대부분 추측이다. 지금으로선 3일 밤 윤 대통령이 격앙된 얼굴로 발표한 담화문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밖에 없다.

긴 담화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거대 야당이 고위공직자와 검사를 탄핵하고, 주요 예산들을 삭감하는 등 정부의 국정 운영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패악질이고, 따라서 거대 야당을 척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야당이 고위공직자를 자주 탄핵하고, 정부가 원하는 대로 예산을 책정해주지 않아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거다. 4일 윤 대통령은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추경호 원내대표 등을 만난 자리에서도 "야당의 폭거(탄핵과 예산 삭감)를 국민에게 알리려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담화 내용을 재확인한 셈이다.[※참고: 물론 이런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것 자체가 정상적인 일은 아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윤 대통령이 주장한 야당의 '예산 폭거'에 예비비 삭감도 들어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의 거친 주장을 최대한 이해하려 노력하더라도 "국회가 예비비를 늘려주지 않았다"는 걸 예산 폭거라고 할 수 있을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예비비는 예산을 편성ㆍ심의하는 시점에서 예측할 수 없는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총액만 세출예산으로 잡아놨다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 재원이다. 사전에 국회로부터 예산 심의를 받지 않기 때문에 비상금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이런 예비비는 재난 등 특정 목적에만 사용할 수 있는 목적예비비와 사용처에 제한이 없는 일반예비비로 나뉜다. 예비비를 어디에 썼는지는 결산을 통해 국회에 보고한다. 이는 지방재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비상금을 비상 상황에서 적절하게 쓴다면 문제 될 건 없다. 하지만 사용처에 제한이 없는 일반예비비는 적절하게 쓰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윤 정부는 일반예비비(이하 예비비로 통일)의 사용처를 두고 숱한 지적을 받아왔다.

대표적인 예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 비용이다. 2022년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 윤 정부는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윤 대통령은 집무실 이전 비용으로 496억원이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22년 그해에만 대통령 집무실 이전 비용으로 650억원의 예비비를 끌어다 썼다. 그해 농ㆍ축ㆍ수산물 할인지원 예비비가 500억원이었던 걸 감안하면 이사 비용이 과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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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끝인 것도 아니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집무실 이전에 쓴 비용은 올해까지 832억1600만원에 달했다. 대통령 집무실로 활용하기 위해 기존 국방부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예상보다 336억1600만원 많은 예비비를 사용했다. 사전 심의를 받지 않는 예비비의 허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해 해외 순방 등에 예비비를 쓴 것도 지적을 받고 있다. 원래 대통령의 해외 순방과 정상외교에 편성된 예산은 249억원이었는데, 그걸 다 쓰고도 모자라 532억원의 예비비를 추가로 편성해서 썼다. 반면 윤 정부가 농산물 할인지원 등 물가대응을 위해 쓴 예비비는 225억원에 불과했다.

"엉뚱한 데에 돈을 쓴 게 아니지 않느냐"는 반론이 나올 법하지만, 해외 순방이나 정상외교 활동은 계획만 잘 짜면 굳이 예비비가 아니라 국회 심의를 받는 정식 예산으로 대응할 수 있다. 김지호 더불어민주당 전 당대표 정무조정부실장은 한 라디오 토론에 출연해 "해외순방 같은 건 1년 전에 미리 계획을 세워서 진행하면 낭비 요인을 없앨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예비비는 사전에 국회 심의를 받지 않기 때문에 계획 없이 지출하기 쉽다. 예비비 규모가 커진다는 건 이런 무계획성 지출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따라서 야당이 정부에 예비비를 줄이라고 요구하는 건 계획성 있게 지출을 하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윤 정부는 거꾸로 예비비 규모를 늘리는 데 집중했다.

2019년 1조2010억원이었던 예비비(일반예비비 예산액 기준)는 2020년 팬데믹 국면에서 1조4005억원으로 늘었다. 팬데믹이 이어진 2021년과 2022년에도 각각 1조6003억원, 1조8002억원으로 소폭 증가했다. 이유 있는 증액이었다는 거다.

[※참고: 이 시기엔 종전에 2조원을 넘지 않던 목적예비비도 크게 늘었다.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목적예비비 예산액은 2019년 1조8000억원에 불과했지만 2020년 4조2100억원, 2021년 8조1000억원으로 늘었다. 2022년엔 팬데믹이 조금씩 약화하면서 예산액도 3조7000억원으로 줄었다. 2023년엔 2조8000억원이었다.]

그런데 엔데믹(endemicㆍ풍토병)으로 전환한 2023년에도 예비비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1조8003억원으로 전년과 비슷했다. 2024년 예산안에서는 2조원, 2025년도 예산안에서는 2조2000억원으로 더 늘렸다. 목적예비비를 포함하면 4조8000억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여기서 1조2000억원의 삭감을 정부에 요청했는데 정부가 거부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은 총 2조4000억원을 삭감했다. 예비비 사용 내역을 두고도 뒷말이 많은 상황에서 점점 늘어나는 예비비를 삭감하려 한 게 과연 야당의 '예산 폭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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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정부가 편성ㆍ제출한 예산안을 증액할 수 없는 국회의 권한은 감액인데, 이를 예산 폭거라고 비난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특활비와 예비비는 사전 심의를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별한 감시가 필요한 예산이다. 그중 예비비는 특활비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그러니 예비비를 줄이라고 하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활동이다. 예비비 삭감을 비상계엄의 이유로 든 건 상식적이지 않다."

그러면서 정 소장은 "예비비가 또다시 이런 문제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서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규제란 다음과 같다.

우선 어차피 사용할 예비비를 사전에 통보하고 쓰도록 개선해야 한다는 거다. 둘째는 '예측할 수 없는 행정 수요'라고 판단할 근거를 마련하고, 그 쓰임새가 정의에 부합하지 않으면 액수를 제한하는 방식의 페널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셋째는 용도 제한이다. 국회가 예산을 삭감한 사업에 예비비를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해야 한다는 거다.

정 소장은 "예비비는 국회의 심의를 받지 않고 사용하는 예산인 만큼 이런 규제라도 둬서 정부가 국회를 존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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