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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많이 다쳤어" 응급키트 들고온 시민들…SNS로 지킨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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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해제 관련 담화를 지켜보며 환호하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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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늦은 밤 시민이 경찰과 대치하는 사이 계엄군이 속속 국회에 도착했다. 군병력은 4일 새벽 0시10분쯤 국회1~3문을 통해 진입을 시도했다. 이에 출입문 앞에 몰려있던 시민들이 "군인들이 왜 들어가냐"며 몸싸움을 벌이며 막았다.

국회 북동쪽 1문 출입을 시도했던 계엄군 10여명은 시민들에 가로막혀 되돌아 갔다. 국회 남동쪽 2문에서도 담장을 넘어 경내로 들어가려는 군병력을 시민들이 막아섰다. 한 중년 남성은 계엄군과 몸싸움을 벌이면서 담장에 오르는 군인을 끌어내렸다. 결국 계엄군은 국회2문 진입도 포기하고 이동했다. 계엄군은 결국 새벽 1시 국회 본회의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되자 약 1시간에 걸쳐 전원 철수했다. 국회의원들이 의결권을 행사할 충분한 시간을 시민들이 벌어준 것이다.

시민들은 계엄군에 맞서는 영상을 찍어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섣부른 무력 진압을 막기 위해 SNS를 활용한 것. 1979년 10·26 사태나 이듬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학습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왔다. 광주 시민들은 전두환 신군부에 맞서 민주화 시위를 벌였지만 계엄군의 실탄 사격과 무차별 구타 등에 진압됐다. 당시 사진 자료나 뉴스 보도가 부족했고 통신이 차단되면서 국내에선 광주의 상황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계엄군에 맞선 시민들은 오랜기간 간첩, 반란군, 폭도라는 누명을 쓰고 고통을 받았다.

결의안이 가결된 후에도 시민들은 한참 동안 국회를 떠나지 않았다. 이날 새벽 5시까지 국회 정문 앞에는 시민 수백여 명이 모여 "우리가 승리한다" "윤석열을 체포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50대 여성 A씨는 "내 눈으로 확실히 계엄령이 해지 되는 걸 보고 들어갈 것"이라며 "집에서 뉴스로 볼 수 있지만 사람이 밖에 많아야 대통령에게 압박이 갈 것 같다"고 했다.

최모씨(50)도 "대통령이나 국방부가 해제 선포할 때까지 남아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옛날 계엄 때 시민들이 많이 다쳤다"며 "사람들이 다칠까봐 응급키트를 챙겨 왔다고 했다"고 했다.

다행히 최씨가 응급키트를 사용할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현장에서 부상을 입은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고, 범법행위로 입건된 경우도 단 한 건도 없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날 시민들의 대응에 대해 "민주주의라는 게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흔들린다고 느낄 때 시민들이 나선 것"이라며 "거리 시위에 익숙한 세대는 국회로 나오고 젊은 세대는 온라인 중심으로 현장 소식을 전하고 공유하며 다양한 형태로 모든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종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김호빈 기자 hobin@mt.co.kr 이찬종 기자 coldbell@mt.co.kr 송정현 기자 junghyun79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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