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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尹대통령 흥분 상태… 계엄 국무회의 끝날 때까지 가라앉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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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파동] 계엄 선포·해제 막전막후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대다수 국무위원이 선포 직전까지 계획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3일 저녁까지도 정부 고위 인사 대다수는 계엄 선포를 낌새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날 오전 10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한 총리 주재로 통상적인 국무회의가 열렸고, 이후 장차관들은 각자 일정에 따라 서울과 세종의 정부청사나 지방 출장지로 흩어졌다. 한 총리는 오후 1시 30분에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며 내년 경제 성장 전망을 논했다.

이상 조짐이 나타난 것은 오후 5시쯤이었다. 국방부 장관과 더불어 계엄법에 따라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를 건의할 수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오후 ‘중앙·지방 정책 협의회’ 등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울산에 가 있었다. 이 장관은 행사가 끝나는 5시 30분까지 있다가 항공편으로 서울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오후 5시쯤 갑자기 퇴장해 기차 편으로 급거 서울로 향했다. 이 때문에 김용현 국방장관과 이상민 장관은 이날 다른 국무위원들과 달리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방침을 사전에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조선일보

그래픽=박상훈


조지호 경찰청장은 오후 6시 20분쯤 서울 미근동 경찰청 청사에서 퇴근하다가 대통령실에서 ‘별도 명령이 있을 때까지 사무실에서 대기하라’는 취지의 연락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 청장은 다만 대기 이유가 계엄 선포 때문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그래픽=이진영


한 총리와 일부 국무위원은 이날 저녁 늦게 대통령실의 호출을 받았다. 오후 9시쯤 한 총리와 최상목 경제부총리, 김용현 국방부 장관, 이상민 행안부 장관, 조태열 외교부 장관, 김영호 통일부 장관 등이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모였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할 생각’이라는 뜻을 밝혔고, 대다수가 난색을 보이며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고 한다. 국무위원들은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경제에 큰 충격이 올 수 있고,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고, 절차적·법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 뜻은 확고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야당이 감사원장과 검사 탄핵을 시도하는 데 대해 “이런 식으로 가면 나중에는 판사까지 탄핵하겠다고 할 것이고, 그러면 사법부에까지 문제가 생긴다”며 큰 우려를 나타냈다고 한다. 현장에 있었던 한 국무위원은 “대통령 생각이 너무나 강해, 아무도 뜻을 꺾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자 한 총리와 국무위원들은 ‘계엄을 선포한다면 국무회의를 열어 심의하자’고 건의했다고 한다. 헌법과 계엄법, 국무회의 규정에 따르면 계엄 선포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에 따라 국무위원들이 급히 현장에 오지 않은 다른 국무위원들에게 전화를 돌렸고,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속속 대통령실에 도착했다. 늦게 도착한 국무위원들도 계엄 선포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도 뒤늦게 도착했다. 이들은 현장에 와서야 계엄 선포 계획을 알았고, 윤 대통령에게 좀 더 생각해보자며 간곡히 만류했다고 한다.

결국 계엄 선포안이 국무위원들에게 배포됐고 오후 9시 40분쯤 윤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가 열렸다. 국무회의 개의(開議) 정족수인 11명을 간신히 넘긴 상태였다. 계엄법에 따르면 국방부·행안부 장관은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를 건의할 수 있는데, 김용현 장관이 이 자리에서 계엄을 건의했다고 한다. 국무회의에 참석한 한 국무위원은 “윤 대통령이 흥분 상태였고, 심의를 마칠 때까지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이후 오후 10시 23분 대통령실 청사 1층 브리핑실에서 카메라 앞에 앉아 계엄 선포 대국민 담화를 읽어 내려갔다. 담화 발표 소식을 접한 일부 기자가 청사에 와 있었지만, 브리핑실 출입문은 봉쇄돼 기자들은 방송을 통해 계엄 선포 소식을 들었다. 윤 대통령의 입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말이 나온 것은 10시 27분이었다.

이 직후 김용현 국방장관은 전군에 ‘비상경계 및 대비 태세 강화’ 지시를 내렸고, 조지호 경찰청장은 경찰청 간부 회의, 최상목 부총리는 기획재정부 간부 회의를 긴급 소집하는 등 부처별로 계엄 선포에 따른 후속 조치에 나섰다. 11시 25분엔 박안수 육군 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 명의로 ‘포고령 제1호’를 발표했다.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내용이었다.

헌법에 따르면 국회가 재적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해야 한다. 국회는 계엄 선포 2시간 30분 만인 4일 오전 1시 1분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출석 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해제하기까지는 이로부터 3시간여가 걸렸다.

윤 대통령은 오전 4시 26분부터 방송된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무회의를 통해 국회의 요구를 수용해 계엄을 해제하겠다”며 “다만, 새벽인 관계로 아직 (국무회의) 정족수가 충족되지 못해, (국무위원들이) 오는 대로 바로 계엄을 해제하겠다”고 했다.

이 방송이 실제 녹화된 것은 3시 26분이었고, 당시 한 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은 정부서울청사 등에서 대기 중이었다고 한다. 한 총리 등은 다시 대통령실에 모였으나, 계엄 해제 요구안 심의를 위한 국무회의는 윤 대통령이 아니라 한 총리가 주재했다. 총리실은 오전 5시쯤 “4시 30분에 국무회의에서 계엄 해제안이 처리됐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6시간에 걸친 비상 계엄 사태가 종료됐다.

이에 앞서 윤 대통령은 3일 오전 11시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국을 공식 방문한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을 맞아 정상회담을 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회담을 빨리 끝내고 오찬을 갖자’며 일정을 서둘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이 이날 오전부터 비상계엄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를 위해 국무회의를 열었고 문서를 갖춰 서명까지 했으며, 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마자 즉각 군에 철수하라고 지시했고 계엄 해제안 처리를 위한 국무회의를 소집했다”며 “법적 절차는 다 지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야당 인사들이 입법 농단으로 자기들의 유죄를 무죄로 만들고 나라는 아예 마비시켰는데, 계엄은 이런 망국적인 위헌·위법 행위에 대해 대통령이 꺼낸 최후의 수단이었다”고 했다.

조선일보

그래픽=박상훈


[김경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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