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2월 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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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투입해 국회 의사 방해 행위는 내란죄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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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 국정 운영 불가능…여야, 현명한 선택을
윤석열 대통령이 그제 한밤중에 일으킨 비상계엄 소동은 6시간 만에 종료됐지만 한국 정치사에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겼다. 윤 대통령은 1979년 이후 사라졌던 군사독재 시절의 망령을 45년 만에 현실 세계로 소환했다. 완전무장한 공수부대원들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 본관으로 진입하는 장면을 보면서 많은 국민은 불가역적으로 확립된 줄 알았던 한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와 무력감을 느꼈다.
헌법 77조는 계엄 선포 요건으로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라고 규정했다. 계엄은 대통령이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고 삼권분립을 정지시키는 초월적 권한이어서 나라의 존망이 걸린 비상사태에만 허용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이 과연 계엄이 필요한 정도의 국가적 위기인가. 국민 대다수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어제 여당 지도부를 만나 “민주당이 탄핵을 남발하는 폭거를 하니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라며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그는 그제 담화에서 민주당의 잇단 탄핵(추진)을 가리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예산 단독처리를 거론하며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다”고도 했다.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방탄을 위해 국회에서 폭주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민주당이 벌인 행동들은 어디까지나 헌정의 테두리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민주당이 무력 쿠데타를 시도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대통령의 대응도 정치의 영역 안에서 이뤄져야 옳다. 지난 4월 총선에서 거대 야당을 탄생시킨 민의를 존중해 야당과 대화와 타협을 시도하는 게 순리다. 정치 현실이 마음에 안 든다고 난데없이 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와 정당의 활동을 중단시키려 한 것은 터무니없는 독재적 발상이며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 2024년 한국 대통령이 내린 결정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윤 대통령이 군 병력을 동원해 국회를 봉쇄하고 본회의 진행을 막으려고 한 것은 계엄의 권한을 넘어서 ‘내란죄’에 해당한다는 해석까지 가능하다. 비상계엄을 선포하더라도 헌법 규정상 대통령은 행정부나 사법부에 관해 특별조치를 할 수 있을 뿐, 입법부인 국회에 대해선 손쓸 수 없게 돼 있다.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과정에서 주요 참모들과 아무런 소통이 없었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 등 측근 몇몇하고만 상의했다고 한다. 그러니 어제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한 3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이 일괄 사의를 표명한 것은 대통령에 대한 항의의 뜻이 담겼다 할 것이다. 비상계엄을 사전 심의한 국무회의에서도 대다수 장관이 반대했지만 윤 대통령이 밀어붙였다고 한다. 장관과 참모로부터 신뢰를 상실한 대통령이 과연 국정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 국무위원 전원 사의 표명으로 공직사회도 뒤숭숭하다. 무엇보다 국민적 신뢰를 잃어버린 대통령의 자리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든 것을 초래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엄중한 정치적·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불가피하다. 김용현 장관 등 계엄 관련자 문책도 필수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 6당이 어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해 오는 7일께 의결한다고 한다.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다. 여권 일각에선 탄핵 대신 야당과 협상해 거국내각 구성과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는 개헌을 추진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어찌 됐건 계엄 선포 이전과 같은 국정 운영은 불가능해 보인다. 현재 대통령실 기능이 마비된 만큼 여야가 협의해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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