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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작가 이헌정의 '21세기형 파격의 달항아리'…새로운 미감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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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이헌정(b.1967)은 전방위 아티스트다. 홍익대학교에서 도예를 전공(학사및 석사)하고 도예가로 출발해 이제는 조각, 가구, 회화, 영상, 건축을 넘나들며 활동 중이다. 그간 전통적인 도자기 작업은 물론, 실험적 설치작업과 영상영역까지 폭넓은 예술 스펙트럼을 선보여온 이헌정이 모처럼 한국적 미감을 상징하는 달항아리에 집중해 전시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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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 2024.11.29 art2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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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경리단길(이태원동)의 박여숙화랑이 최근 개보수를 마치고 지난달 21일 작가 이헌정의 개인전을 개막했다. 오는 12월 20일까지 박여숙화랑 1,2층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한국적 아름다움의 집약체인 '달항아리'를 중심으로 관습적 미감을 뛰어넘기 위해 힘써온 작가 이헌정의 도자작품 100여점이 출품됐다. 그 중 달항아리는 16점이고, 나머지 작품들 또한 모두 백색의 도자기들이다.

그간 이헌정은 도자기 외에 도조, 도자가구, 도자벽화, 도자건축, 영상, 설치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도예의 본질, 예술의 근본을 질문해왔다. 그런 그가 이번 박여숙화랑에서의 작품전에서는 오롯이 흙과 불에 의한 '도자' 본령으로 돌아와 달항아리와 백자의 아름다움을 파고들었다.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 한국 전통문화를 표상하는 달항아리가 품고 있는 절대적 미감에 대한 공동체의 기억문화를 살짝 비튼다. 넉넉하니 푸근한 달항아리는 우리 민족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총아이긴 하나 그를 오늘에까지 그대로 재현하거나 답습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표한 것이다. 그는 21세기다운 달항아리, 저마다의 개성이 발현된 달항아리 또한 조선시대 완벽한 미감의 전통의 달항아리만큼 의미있고 아름답지 않느냐고 질문하고 있다. 모두가 가치있게 여기는, 만들어진 절대적인 신념에 이의를 제기하며, 그만의 또다른 실험과 모색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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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 2024.11.29 art2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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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 출품된 이헌정의 달항아리는 스케일부터 크고, 달항아리의 미감을 보여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클래식한 달항아리들은 우리가 익히 보아온 그 보름달처럼 너그럽고 유려한 달항아리다. 그런데 전시장 한켠에는 낯설기 짝이 없는 파격의 달항아리들도 보인다.

자고로 달항아리는 위 아래 두 덩이로 만들어 이를 이어붙인 뒤 이음새를 감추는 게 통상적이다. 하지만 이헌정은 이음새를 애써 지우지 않은, 아니 오히려 이를 무덤덤히 드러낸 달항아리도 내놓았다. 또 한쪽이 움푹 들어가거나 찌그러진 달항아리, 심지어 바닥에 툭 떨어뜨려 깨어진 달항아리를 재조합한 것도 전시하고 있다. 우아하고 완벽한 아름다움을 품은 달항아리만 일률적으로 보여준다면(이헌정은 어느 작가 못지않게 이 절정의 달항아리도 솜씨좋게 빚을줄 안다) '이헌정다운 조형세계'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바로 21세기형 달항아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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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 2024.11.29 art2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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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인 궁극의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도예를 시작한 이헌정은 큰 규모의 대형작업과 설치작업으로 우리의 발길을 멈춰 세운다. 하지만 물과 불과 흙을 다루며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는 기술적으로 치밀하고 빈틈없는 장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서로 상반되는 물성의 흙·물·불을 매개로 '육체와 정신의 조화로운 융합'의 결과물로 세상에 드러내는 이헌정의 작품은 뜨거운 용광로같은 가마에서 나와 관객 앞에 현현(顯現)할 때까지 스스로 변화하고 변형되며 모양을 잡아간다. 그리고 불에서 나와서도 여전히 자신이 놓인 공간과 환경과 어우러지며 불에서 녹듯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이어간다.

이헌정은 작품이 스스로 뱉어내고 들이키는 날숨과 들숨을 거듭하며, 더없이 정교하고 섬세한 작업과정을 통해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환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도자의 피부를 만들어가며 예술적 경계를 넓혀나간다. 이 대목에서 그는 자문한다. 예술적 경계에서 사회적으로 합의된 정형화된 아름다움이 아니라, 스스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지난하고 독자적인 길을 따르고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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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 서울 이태원 박여숙화랑에서 오는 12월 20일까지 열리는 이헌정 개인전에 출품된 달항아리 작품들. [사진=박여숙화랑] 2024.12.04 art2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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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부터 한 곳에 머물기를 거부해온 이헌정은 도예를 전공했지만 입체및 조각 등 타 장르에 도전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했고, 가천대학교에서 건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간 40여 회의 개인전을 통해 국내외에서 역량을 알린 그는 2005년 청계천에 192m 길이의 도자 벽화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를 제작한 것을 비롯해 크고 작은 기념비적인 환경작품, 건축 등을 선보였다. 또 1999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 노먼 포스터(b.1935), '빛의 작가' 제임스 터렐(b.1943), 인도 출신의 영국작가 수보드 굽타(b.1964),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b.1963) 등 세계적인 예술가와 셀럽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해 '예술가의 예술가'로 불린다.

이헌정의 작품은 서울공예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본태박물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세르누치미술관,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 (LACMA), 호림박물관, SK D&D 생각공장 당산, 디자인하우스, 구하우스뮤지엄, 제주 비오토피아, 라까사호텔, 정림건축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과 기관에 소장돼 있다.

이헌정은 "도자기는 물레질과 덤벙질을 거쳐 유약을 바르고, 가마에서 뜨거운 불에 구워내는 과정을 통해 탄생한다. 전통적으로 대부분의 도예가들이 제작과정에서 깨지거나 주저앉거나 티끌이 묻은 작품은 깨뜨리지만 내게는 '망친 작품'이란 없다. 무흠결의 작품을 얻기 위해 안달하지 않는다.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지든 모든 도자기에는 아름다움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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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 2024.11.29 art2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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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달항아리라고 하면 우아하고 고요한 멋을 강조하는데 그런 미감은 이미 18세기에 완성된 것이다. 그같은 강요된 '전통'을 깨뜨리고,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21세기의 달항아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같은 인식에서 탄생한 이헌정의 '파격의 달항아리들'은 물질과 비물질, 직관과 논리, 감각과 이성 같은 대립적 요소들 사이의 밸런스를 보여주며 편안한 마음으로 음미하게 한다. 차가운 도자기이지만 질박하니 진솔한 미감도 발견하게 된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늘 자유롭기를 원하며 얽매이지 않고 살아온 이헌정은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작업조차 아름다움이란 패권적 힘에 의지해서 계속해온 게 아닐까란 의문을 품으며 예술이란 궁극의 명제와 반항의 경계를 넘나드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그간의 이런 의문과 반성 그리고 궁극적인 아름다움의 실체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는 답이 아닌 질문의 실체들이다"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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