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원정 문화부 기자 |
일본 거장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대표작 ‘전장의 크리스마스’(사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포로수용소 소장 요노이와 영국인 포로 셀리어스의 기묘한 관계를 그린다. 1983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지만, 한국에선 지난달 4K 복원판이 처음 개봉했다. 개봉이 왜 오래 걸렸는지 첫 장면부터 짐작이 간다. 포로 강간 혐의로 할복을 명령받는 가네모토가 조선인이기 때문이다. 둘은 동성연인 관계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후 영화의 전개가 중요하다. 영국 포로를 참수하려던 요노이를, 셀리어스의 입맞춤이 가로막는다. 일본군이 변태 취급했던 조선인 가네모토의 동성애적 감정이 결국 요노이 자신의 감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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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인종적 우월성을 강조하며 조선 식민 지배를 합리화한 일제의 논리를 무너뜨리는 장면이다. 영화는 무고한 희생양을 양산하는 일본 군부도 비판한다. 결국 나을 게 없는 부조리한 인간들이 타국을 침략한 게 일제 본질이란 것이다.
애초 일본군과 영국 포로 간의 다소 감상적 관계에 치중해 피지배국의 아픔은 배제된 서사다. 남아공 출신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 원작이어서 생긴 한계다.
다만, 오시마 감독은 자국의 재일조선인 차별을 비판한 영화를 줄곧 찍어왔다. 이 영화로 음악감독 겸 배우 데뷔한 뮤지션 사카모토 류이치, 영국 록스타 데이비드 보위 등 연기 초짜들을 파격 캐스팅한 건 기존 일본 제국주의 찬양 영화 출연 배우들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였다. 군복이 어울리지 않는 영혼들을 전장에 욱여넣은 연출 의도는 영혼을 말살하는 전쟁을 누구라도 멈춰 세워야 한다는 것. 과거에서 날아온 현재진행형의 메시지다.
나원정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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