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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광화문에서/김현수]철강 배터리 반도체 흔들… ‘슈퍼 디바이드’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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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김현수 산업1부 차장


요즘 경북 포항이 심상치 않다. 지난달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1선재공장과 현대제철 포항제2공장이 연달아 문을 닫았다. 포스코는 7월에도 포항 제강공장의 문을 닫은 적이 있다. 협력업체 여파까지 감안하면 지역경제 타격도 우려된다.

더 큰 문제는 탈출구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철강 공장 폐쇄는 중국발 ‘치킨게임’이라는 구조적 원인 탓이다. 세계 철강 생산량의 55%를 차지하는 중국은 자국 건설 경기가 악화되자 세계 각지로 재고 떨이를 하고 있다. 독일 철강 기업 티센크루프스틸은 얼마 전 전체 직원의 40%에 해당하는 인력 1만1000명을 줄인다고 밝혔다. 근무 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더라도 웬만하면 감원을 피하는 독일도 속수무책인 것이다. 허리띠를 졸라매며 누가 더 오래 버티느냐의 전쟁이 심화되고 있다.

배터리 업계도 버티기 싸움 중이다. 초기 시장에서 주류 시장으로 넘어가기 전 일시적 수요 둔화를 뜻하는 ‘캐즘’만으로 현 위기를 설명하기 어렵다. 복잡한 지정학적 요인이 얽혀 있다. 탄소 절감에 진심이던 유럽은 배터리 자립 실패, 중국의 공세로 친환경차 정책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져 있다. 미국도 도널드 트럼프 차기 행정부의 등장으로 ‘전기차 구매 캠페인’ 같았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존치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그런데 이 같은 한국 주력 산업의 위기는 경제지표엔 잘 드러나지 않았다. 지난달까지 수출은 14개월 연속 증가했고, 1분기(1∼3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3.4%, 2분기(4∼6월)엔 2.3%로 양호했다. 본보가 매출 100대 기업의 2분기 실적을 따져보니 총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3%, 영업이익은 무려 81.3% 늘었다.

지표는 왜 좋았을까. 우리 경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큰 탓이다. 반도체 경기가 좋으면 수출도 실적도 빛나 보인다. 100대 기업의 2분기 영업이익 증가분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90.2%였다. 반도체가 철강, 배터리, 석유화학, 항공, 유통 등 전 분야의 위기를 가린 것이다. 최근까지 국제통화기금(IMF) 고위직을 인터뷰하면 늘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결정짓는 요소로 반도체 경기를 꼽을 정도였다.

정부가 지표만 보고 낙관하는 사이 반도체와 나머지 산업의 경기는 ‘평행우주’처럼 따로 돌아갔다. 수출 호황으로 돌아가는 세계와 찬 바람만 부는 내수의 세계도 접점이 없었다. 투자와 수요가 특정 산업과 소수의 기업에 집중되고, 부의 낙수효과가 사라지는 ‘슈퍼 디바이드’ 현상이 심화한 것이다.

반도체 내부에서도 인공지능(AI)으로 갈라지는 슈퍼 디바이드 현상이 보인다. 엔비디아만 보고 전체 반도체가 호황이라 말할 수 없다. 아직 국내 소부장 업계는 일반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범용 반도체 생태계에 주로 의지하고 있다. 구형 메모리 반도체는 중국의 공세에도 노출돼 소부장 업계는 “불황 수준”이라며 몸부림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가 강해지는 내년에는 슈퍼 디바이드 현상이 더욱 도드라질 것이다. 극단적으로 갈라진 경제에서 전체 지표만 보고 낙관하다간 위기 대응에 나설 골든타임을 놓친다. 이미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산업계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김현수 산업1부 차장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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