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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수)

[공감]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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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JTBC <뉴스룸> 문화초대석에 출연했을 때 고 김민기씨는 몹시 경직돼 보였다. 노련한 진행자는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본인도 오늘은 긴장된다며 “선생님은 긴장 안 되십니까?”라고 말을 건넸다. 그는 여전히 굳은 얼굴로 두 손을 모아쥔 채 입술만 간신히 떼어 답했다. “죽겠죠, 뭐. 여기 있는 게.”

보통 저렇듯 긴장하면 감정을 숨기고자 짐짓 너스레를 부리거나 어색함을 깨려고 아무 말이나 던지기 마련이다. 내 경우엔 그랬다. 그러고선 두고두고 자책하곤 했다. 이야기를 들은 지인이 말했다. 원래 그런 거라고. 내키지 않으면 먼저 입을 열지 않아도 괜찮을 만한 사회적 위상을 지니지 않은 한, 우린 어떻게든 말을 이어가며 순간순간 타개할 수밖에 없다고. 살다 보면 어느 시점부턴 수치심이나 자괴감에 둔감해진 채 ‘뭉개고’ 가기 마련이라고.

김민기씨는 내키지 않으면 입을 열지 않아도 될 위치의 다른 몇몇 대가들과 달리, 그렇게 할 수 있었음에도, 질문을 회피하거나 단답형으로 답하고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색함을 못 이겨 아무 말이나 입 밖에 내지도 않았다. ‘죽겠는’ 상황에서도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 다루듯 어휘와 표현을 신중히 고르며 말을 이어갔다. 그 모습이 그가 살아온 날들과 닮은 듯했다. 누구는 변절하고, 누구는 타협하고, 누구는 사회경제적 특권을 누리며 혀끝으로만 정의를 말하는 세상에서 그는 냉소하며 홀연히 속(俗)을 떠나지 않았다. 늙은 하사관의 마지막 출근을 위해, 가난한 청년의 합동 혼인 잔치를 위해, 노동자와 농민과 어린이를 위해 계속 노래를 짓고 극을 제작했다. 힘든 시기에 ‘연극은 원래 배고픈 거야’ 혹은 ‘이 판이 그렇지 뭐’의 논리로 뭉개지 않았으며, 빚내서라도 연극인들의 생계를 꼬박꼬박 챙겼다. 그런 그가 좋았다.

인터뷰 후반에 이르러 ‘아침이슬’의 파급력이 부담스럽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6월 항쟁 당시를 회상하며 답했다. “워낙 많은 사람이 부르다 보니까, 저도 그때 군중 속의 한 사람이었지만, 아무도 저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지만, 고개를 못 들겠더라고요. 그 사람들이 다 절절하게 부르니까 그럼 저 사람들 노래지 그러고서 또 다 잊어버렸습니다. 부담이랄 것도 없고.” 유명해진 노래가 이젠 본인 아닌 대중의 것이라 말할 뛰어난 창작자는 어쩌면 더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거리를 메운 군중이 하나의 목소리로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마주한 순간, 빛나는 자긍심이나 벅찬 감회에 앞서 고개 못 들겠는 감정부터 느낄 사람은 그뿐일 듯했다. 그런 그가 좋았다.

“바위처럼”에 맞춰 율동하고 “노래만큼 좋은 세상”을 불렀던 내 또래에게 김민기씨는 선배나 스승보단 ‘스승의 스승’ 세대에 가까울 것이다. 난 ‘아침이슬’을 중학생 때 수련회 가서 배웠고, ‘상록수’나 ‘천리길’은 광고음악으로 먼저 접했다. 그랬음에도 그 노래들은 흘러간 옛것 아닌 동시대 것들로 생각됐다. 언제 어디서 흘러나오든 그가 지은 노랫말을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말 같지 않은 말에 지친 내 귀가 말들을 모두 잊어 듣지 못했네”라 나직이 일갈하고 “싸움터엔 죄인이 한 사람도 없네”라 날카롭게 짚어내면서도 “웬 하얀 개가 와서 쓰다듬어 달라길래 머리털을 쓸어줬더니 저리로 가더구나”의 노랫말을 떠올릴 감수성의 결을 지닌, 드문 어른 남자. 그런 그가 좋았다.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으며 무엇도 더럽힐 수 없는 깨끗하고 단단한 것을 마음에 품고 살아감에 대해 읽었다. 그리고 내내 생각했다. 내게 그건 어떤 것일까. 세상 안의 희소하고 아름다운 존재들과 더불어 세상 너머로 간 그를 떠올린다. “주여 이제는 여기에”를 찾아 듣는다.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의 ‘얼굴 여윈 사람들’이 여전히 거절당하는 지금 여기서,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한다.

경향신문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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