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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재팬 톡] 일본식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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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김경민 도쿄특파원


역사는 언제나 시간과 맥락의 교차점에서 해석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역사를 논할 때 일본은 종종 다른 교차점에 서 있는 듯하다.

교도통신이 사도광산 추도식에 일본 대표로 참석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참의원)의 과거 야스쿠니신사 참배 보도를 오보로 정정했다. 한국의 불참 배경이 오보 때문이라는 게 현지의 여론이다.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언론의 오보 정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일본이 과거 행적에 대해 편의적으로 태도를 바꾸는 양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사자 입장에선 과거사 인식에 얽힌, 다분히 의도적인 선택적 망각으로 읽힌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개인의 신념 표현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국가의 정치적 맥락과 맞닿아 있다. 야스쿠니신사는 그저 그런 추도시설이 아니다.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그 책임을 은폐하려는 역사적 상징이다. 이쿠이나의 과거 참배 보도에 대해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오보였다고 일본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야스쿠니는 갔는데 참배는 하지 않았다'는 정보가 우리에겐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닌데, 한국의 추도식 불참이 마치 전부 그것 때문인 양 호도한다.

일본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식의 태도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2015년 일본 정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지옥섬' 군함도의 사례가 그렇다. 당시 일본은 강제노동 피해자를 기리는 시설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내세워 등재를 관철했다. 이후 일본은 해당 약속을 철저히 무시하고 강제노동 표현이 꼭 강제동원을 인정한 건 아니라고 말을 바꿨다. 군함도 전시관은 강제노동의 흔적을 축소하며 피해자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일본은 이를 '국내 문제'로 일축할 뿐이다.

이번 사도광산 사례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국제사회의 시선이 집중될 때만 과거사를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척한다. 시간이 지나면 번복하고 논지를 흐린다. '군함도의 성공 사례'가 사도광산까지 이어졌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왜 일본은 과거사 문제에서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지 못할까. 이는 일본 정치의 구조적 특성을 봐야 한다. 일본의 보수 정치세력은 국내 여론을 의식해 과거사 문제에서 이중적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야스쿠니 참배와 같은 문제는 우익세력의 지지를 얻기 위한 주요 수단이다. 반면 국제사회에선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할 수 없기에 상황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을 직시하고 바로잡는 과정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일본의 선택적 기억은 이런 과정 자체를 부정하고, 결과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인 것은 분명하다.

이미 일본 사회에서 이런 역사인식은 주류가 된 지 오래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지 않나.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정당화하거나 은폐하려는 시도가 성공해서는 안 된다. 일본 우익들은 '왜 한국은 저렇게까지 하느냐'고 한다. 우리가 방관할 수 없는 건 역사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역사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국가는 과거의 책임을 인정하고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한다. 일본과 비교되는 독일이라는 좋은 사례가 있다. 결국 다른 교차점에 서 있는 일본식 태도로는 진정한 화해도, 평화도 이룰 수 없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변명은 역사의 법정에선 통하지 않는다.

희망적인 것은 이번 사태에도 일본이 한일 관계 개선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한 달 뒤면 양국은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는다. 이시바 시게루 내각에서도 '셔틀외교'(양국 정상이 번갈아가며 왕래)는 유지된다. 양국을 오가는 방문객이 사상 최대인 만큼 정부에선 출입국 간소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내년 사도광산 추도식에서 일본이 강제노동을 한 조선인 노동자와 유족에게 진심이 담긴 추도사를 전하길 바란다. 잘못한 것은 과거의 사람들이다.

k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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