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박이웅 감독 <본편>
박이웅 감독이 남은 사람들을 이야기하게 된 이유
박이웅 감독이 남은 사람들을 이야기하게 된 이유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박이웅 감독. ㈜고집스튜디오, ㈜트리플픽쳐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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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주의
평범한 작은 어촌 마을, 그곳으로부터 탈출을 꿈꾸던 젊은 어부 용수는 늙은 선장 영국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사고로 자신의 죽음을 위장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영국은 왜 용수가 죽음을 위장해 달라고 한 부탁을 받아들였을까. 용수는 왜 자신의 죽음을 위장하고 마을을 떠나야 했을까.
데뷔작 '불도저에 탄 소녀'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박이웅 감독이 이번엔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한 '아침바다 갈매기는'으로 돌아왔다. 주인공 영국의 행보를 뒤따라가다 보면 그의 내면에서 파도치는 감정들은 물론 그가 발 디딘 현실 속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사회문제가 밀물처럼 밀려오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과 질문을 남긴다.
200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졸업작품으로 시작한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당시 감독의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에서 출발했다. '지방에 있는 사람들은 왜 열악한 환경에서 계속 그곳에서 살까.' 어찌 보면 단순한 질문 같지만, 평소 세상을 바라보는 감독이 시선이 향한 곳이 '사회'에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간단해 보이는 질문에서 시작한 생각의 조각들은 '떠나려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잡으며 모이기 시작했다. '왜 떠날까'를 생각하자 산개해 있던 이야기가 하나로 끌어올려지는 것처럼 딸려 올라왔다.
어촌을 제대로 알기 위해 15일 정도 지도도 없이 바다 쪽으로 다니며 본 것들을 바탕으로 초고가 나왔다. 이후 두 차례 더 어촌 마을을 돌았다. 모두 세 차례에 걸쳐 45일가량 정도 조사하며 시나리오를 다듬었다. 그렇게 완성된 이야기가 '아침바다 갈매기는'이다. 지난달 18일,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만난 박이웅 감독에게 왜 어촌 마을에 남겨진 사람의 삶에 주목했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스틸컷. ㈜고집스튜디오, ㈜트리플픽쳐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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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 마을에 남겨진 영국과 판례, 그 현실감 넘치는 이야기
영국과 그의 마을에서 만날 수 있는 건 '현실'이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영국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영국을 따라가는 사이에 영국이 살아가고 있는 어촌 마을의 현실을 자연스럽게 마주할 수밖에 없다. 지방 소멸, 빈부격차, 이주여성,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인 문제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영국의 발걸음에 녹아 있다.
영국이란 캐릭터가 영화의 중심에서 단단하게 자리 잡고 관객들을 이끌어 가기에 여러 사회적인 문제와 갈등에도 지치지 않고 끝까지 영화를 완주할 수 있다.
박이웅 감독은 "만약 두 번째나 세 번째 시나리오였다면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야겠다는 지향점이 명확하고, 어떻게 재단해서 끌고 가야겠다는 게 보인다"라며 "그런데 첫 번째 시나리오라 그런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마치 갖다 놓은 것처럼 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그 사람이 정확히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방해하는지 짐작되는 것들만 있지 잘 모른다"라며 "오히려 그런 것들이 배치되면서 나도 모르는 부분이 캐릭터 안에 형성된 것 같다. 그걸 파헤쳐서 쉽게 가야겠다가 아니라 그대로 놔둔 것들이 캐릭터의 깊이를 더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스틸컷. ㈜고집스튜디오, ㈜트리플픽쳐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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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현실감을 더한 건 땅에 발붙인 캐릭터와 현실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점 외에도 현장감을 살리기 위한 감독의 노력이었다. 영국이 바다로 나가 조업을 하는 장면 등 모든 과정을 CG가 아닌 실제 바다에서 촬영했다.
그러나 바다로 나간다는 건 녹록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내 동기인 촬영 감독들이 '절대 바다에 나가지 말아라' '나가는 순간 지옥이다' '아무것도 통제 안 될 거다'라고 했는데, 정말 '액션'을 외치고 45초 찍는 동안 배가 방향을 90도 틀었다. 정말 이래서 그런 말을 했구나 싶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도 "실제 바다 촬영은 이 영화가 사실적인 것들을 다루려 한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는데, 성사돼서 좋았다"라며 "이렇게 했기 때문에 담겼던 그 이상한 움직임들, 거기 직접 가 있으니 느껴지는 디테일이 영화에 담겼다"라고 말했다.
바다 촬영 장면 이야기를 하던 박 감독은 "나머지 분들은 멀미를 안 하셨는데, 난 멀미를 했다"라고 웃은 뒤 "운 좋게도 윤주상 배우는 멀미를 안 하는 체질이었다. 되게 자랑스럽게 멀미를 안 한다고 하셨는데, 진짜 멀미를 안 하셨다"라고 했다. 그는 정말 다행이었다고 했다.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스틸컷. ㈜고집스튜디오, ㈜트리플픽쳐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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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상과 양희경이라는 중심…박종환과 카작이 채워준 공간들
영화의 중심인 영국과 함께 영화를 지탱해 가는 또 다른 인물 판례를 연기한 건 배우 윤주상과 양희경이다. 연극, 드라마, 영화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 중인 베테랑이자 '믿고 보는'이라는 수식어가 당연한 두 배우가 영국과 판례를 연기하며 스크린에는 사실성이 더해졌다.
영국은 팍팍한 삶을 산 캐릭터다. 그러나 끝까지 강하게 나아가야 하는 캐릭터인 만큼 강렬한 인상만 지녀서는 관객들이 따라오도록 하기엔 힘들었다. 강렬함과 호감,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줄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박 감독은 "윤주상 배우가 해 온 역할들을 보면 전형적이면서도 밉지 않은 인물들이었다. 그런 부분에서 장점이 부각됐다. 또 건장한 체격과 에너지가 있었다"라며 "여기에 목소리가 주는 장점도 있었다. 한눈에 봤을 때 외모가 들어오는 것도 좋지만, 한마디 했을 때 귀로 들어오는 호감이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윤주상 배우를 보고 알았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윤주상과의 촬영 일화 하나를 들려줬다. 영화 후반, 영국이 형락(박원상)과 술을 마시며 대화하는 신은 감독에게도, 윤주상에게도 가장 힘들었던 촬영이었다. 어디까지 영국을 밀어붙여야 하는지에 대해 감독조차 잘 몰랐다. 이를 찾아가는 과정이 두 사람을 힘들게 했다.
스무 테이크 넘게 찍으면서도 원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한 차례 쉰 후, 윤주상이 촬영에 임하며 만족스러운 장면이 탄생했다. 박 감독은 "영화는 결국 감독의 예술이겠지만, 그 연세 많은 배우분이 여기까지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지 않았으면 안 나왔을 장면"이라며 "그런 부분에서 정말 되게 고마운, 힘들었지만 고마운 순간이었다"라고 말했다.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스틸컷. ㈜고집스튜디오, ㈜트리플픽쳐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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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는 처음부터 양희경 한 명밖에 없었다. 자신의 외고모 할머니의 성함을 그대로 가져온 판례라는 캐릭터에는 외고모 할머니의 삶이 많이 녹아 있었다. 박 감독은 "그 할머니가 딱 판례의 양희경 배우처럼 생기셨다. 다부지시고, 웃으실 때는 푸근하고. 한 사람밖에 없지 않나"라며 "다행히 역할을 맡아주셨다"라고 했다.
윤주상과 양희경뿐 아니라 박종환과 베트남 배우 카작 역시 어촌 마을의 용수와 영란이 되어 극을 채워줬다. 두 사람이 현장에서 보여준 용수와 영란은 감독이 생각했던 캐릭터 이상으로 성장하고 확장됐다.
그는 "박종환 배우가 현장에서 처음 연기하는 걸 보고 그런 빈공간을 가진 캐릭터여야겠구나, 이게 맞겠다 생각했다. 박종환 배우에게 도움받은 면이 있다"라고 칭찬했다. 이어 "카작 배우의 오디션 테이프를 봤는데 상대가 세면 세게, 약하면 약하게 호흡하며 연기했다. 이건 굉장한 장점"이라며 "그리고 이주여성 캐릭터와 관련해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는데 흔쾌히 연기해 줘서 고마웠다"라고 전했다.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스틸컷. ㈜고집스튜디오, ㈜트리플픽쳐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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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우리에게는…
영화는 절망이란 파도가 밀려드는 속에서도 잘 들여다보면 남은 자들에게 기회와 희망을 안긴다. 용수를 떠나보낸다는 건 영국과 판례에게는 기회이자 희망이 될 수 있다. 영국은 보내주지 않아 겪어야 했던 딸의 죽음에 대한 속죄이자 후회를 반복하지 않을 기회, 판례 역시 아들의 죽음에 눈물 흘렸던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아들을 자기 손으로 제대로 보내줄 기회다.
박 감독은 "한 명은 먼저 떠나보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일을 시작했고, 한 명은 떠나보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서 시작한다"라며 "처음 초고를 썼을 때는 이런 느낌을 받진 못했다. 이건 내가 2008년 이후 겪었던 내 삶의 굴곡이 들어간 거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 사적으로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낸 분도 있겠지만, 사회적으로도 세월호라든가 큰일을 겪었잖아요. 여러 가지 공동의 경험이 있어요. 어떤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들을 옆에서 온전히 본다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고, 남은 사람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는 것. 이런 게 영화에 담긴 거 같아요."
그렇지만 지금의 엔딩은 처음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다다른 끝에 만난 엔딩이다. 원래는 다 떠나고 남은 집의 문을 영국이 두드린다는 엔딩이었다. 그는 "엔딩이 이렇게 나온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런저런 엔딩을 고민하다가 나도 모르게 써놓고, 이게 왜 이렇게 나왔는지 나도 나중에 생각을 다시 해봐야 하는 시나리오"였다는 것이다.
그는 시나리오 속 인물들이 나도 모르게 말하기 시작하면 조심하라고 하지만, 오히려 전율이 드는 경험을 했다. 그렇게 완성된 엔딩을 온전히 전달하기로 했다. "그 엔딩이야말로 영화를 완성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옛날에 이 사회를 지탱해 주던 것들이 다 와해되고, 오히려 구태처럼 남아서 사람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새로 만들어진 것들은 우리를 지탱할 수 있는 걸까요? 아니기에 떠나고자 하고, 사는 게 각박해지고 힘들어지는 상황인 거죠. 이런 곳에서 뭐가 남아 있을까 고민했어요. 결국은 떠나보내기로 한 마음, 처음에는 본인도 잘 몰랐지만 떠나보내야겠다는 선택과 결심이 그래도 남아 있는 우리에게는 보듬고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요."
<에필로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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