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이 1인 승무제 도입 등 사측의 인력감축 계획에 항의하며 준법운행을 시작한 지 7일째 되던 지난 26일 오전, 서울 지하철 2호선 열차 125대가 잠시 멈춰섰다. 열차를 운행하던 차장이 4분 16초 동안 화장실을 이용하느라 자리를 비운 탓이었다.
바쁜 출근길 열차 지연의 원인이 '용변' 탓이었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온라인에서 여러 말이 오갔다. "열차에서 내려서 헐레벌떡 화장실로 뛰어서 용변 보고 4분 만에 오신 게 대단….", "진짜 화장실 한번 가기 힘든 직업 많다. 열차 정차하기까지 얼마나 고민에 스트레스겠냐고.", "이런 상황인데 1명으로 줄인다고?" 등 차장의 행동을 이해한다는 반응이 주였다.
지하철 운행 중 차장의 역사 화장실 이용이 특이한 일로 여겨져 기사가 된 것은 평소 지하철 승무원들의 화장실 이용이 쉽지 않으리라는 점을 암시한다. 지난 26일에는 열차가 20분 지연되는 불편에 그쳤지만, 지난 2007년에는 용변을 보려던 승무원이 사망하는 불행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박원순 서울시가 나서 노사정 기구인 '기관사 근무환경 개선단'을 발족해 여러 권고안을 냈지만, 오세훈 서울시는 이를 다시 뒤집고 있다.
지난 27일 장기현 서울교통공사노조 승무본부 사무국장은 전화 인터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으로 바뀌면서 (권고안이) '흔적 지우기'식으로 무효화 됐다"며 "차장이나 기관사들의 노동환경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장 사무국장은 "안전에는 1%라도 허점이 있으면 안 되는데, 2명이 탈 때와 1명이 탈 때는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다를 수밖에 없다"며 "지하철 노동자들이 2호선 1인 승무와 인력감축에 반대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시면 좋겠다"며 이번 파업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호소했다.
▲ 서울 시내 한 차량사업소에 세워진 열차.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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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현상은 간이변기로 해결…공황장애 위험 일반인 7~8배"
프레시안 : 최근 지하철 운행 중 차장이 생리현상을 해결하려 역사 화장실에 갔고 후속 열차가 지연된 일이 보도돼 화제가 됐다. 시민 다수는 차장의 행동을 우호적으로 보는 것 같다.
장기현 : 생리현상이라는 게 많은 사람이 느끼는 일이다. 일상생활을 하다 갑작스럽게 신호가 오면 그것처럼 힘든 게 없기 때문에 시민들도 이해하시고 '그런 건 봐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다.
저희가 한 번 지하철을 운행하면 짧게는 1시간 반, 길게는 4시간까지도 운행한다. 차 타기 전에 화장실을 다녀오지만 상황에 따라 못 갈 수도 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급히 화장실을 가는 승무원도 꽤 있다.
특히 여성 승무원들은 차 타기 전에 커피도, 물도 안 마신다. 식사할 때 국을 안 드시는 여성 승무원도 꽤 많다. 남자보다 여자가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힘든 부분이 있으니까.
프레시안 : 평소에 급하게 생리현상을 해결해야 하면 어떻게 하나?
장기현 : 공사에서 간이 화장실 변기를 하나 준다. 환자들이 쓰기도 하는 건데, 아이들이 쓰는 간이 변기를 어른용으로 만든 거라고 보면 된다. 또 소변을 처리하라고 위생봉투를 하나 준다. 그걸로 운전실에서 해결한다. 인격적으로 안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공사는 운전실에 CCTV를 설치한다고 난리다.
2007년 12월에는 한 차장이 지하철 운행 중에 창밖으로 용변을 보다 떨어져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그 뒤로 선로 중간에 승무원들이 쓸 수 있도록 간이화장실 설치를 강화했다. 그런데 겨울에 동파된다거나 고장나는 일이 많다 보니 폐쇄조치된 곳이 많다. 2호선 신대방역과 구의역에 있는 간이화장실도 12월 10일 다시 열 예정이라고는 하는데, 2, 3년 가까이 폐쇄돼 있다.
프레시안 : 생리현상 해결에 대한 업무 매뉴얼이나 지침이 따로 있나?
장기현 : 업무 매뉴얼에 별도로 규정된 내용은 없다. 공사는 간이 변기를 줬으니 그걸로 해소하고, 중간에 간이 화장실이 있으면 거기를 활용하라고 한다. 그런데 승무원들이 마음이 급해 간이 화장실을 가기 어렵고, 간이 변기도 쓰기 그러면, 그냥 참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승무원 80% 가까이가 과민성 대장증후군에 걸려 있다. 지하철을 타면 괜히 배가 아프고, 혹시 모르니 신호가 없어도 화장실을 들렀다 차를 탄다. 직업병의 일종이다.
프레시안 : 지하철을 운행하는 기관사나 차장이 겪는 어려움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나?
장기현 : 공황장애나 외상스트레스증후군에 걸릴 확률이 일반인보다 7~8배 높다고 한다. 좁은 터널에서 혼자 일하고, 단순 반복 업무를 하고, 과도하게 집중하는 일도 많은 게 원인이라고 한다. 공황장애로 14명의 기관사가 자살하기도 했다.
이런 일을 막으려 전임 시장 때 '기관사 근무환경 개선단'을 만들어 권고안을 냈다. 정신질환 고위험군인 분들에 한해 가벼운 근무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운전시간을 감축하라는 등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오세훈 서울시장으로 바뀌면서 '흔적 지우기'식으로 무효화 됐다. 게다가 지금은 지하철 진행 방향에는 기관사가, 역방향에는 차장이 타는데, '경영효율화'를 명분 삼아 2호선 지하철 1인 승무를 도입하겠다고도 하고 있다.
▲ 전동차 창밖으로 용변을 보려다 승무원이 숨진 다음해인 2008년 서울 지하철 운전실에 설치된 간이 변기. ⓒ연합뉴스 |
"노동환경과 안전문제 악화를 막기 위한 파업…노동자들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길"
프레시안 : 서울교통공사노조가 태업을 진행하고 파업을 준비 중인 이유 중 하나도 공사측이 지하철 2호선 1인 승무제 도입 등 2026년까지 2200명 인력감축을 추진하는 데 반대하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다. 이런 일들이 앞서 말한 차장이나 기관사의 노동환경에 악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하나?
장기현 : 심각하다. 전체적으로 2200명을 줄인다고 하는데, 그 중 승무원은 370명 정도 된다. 2호선 1인 승무하면 186명을 줄일 수 있다고 하고, 거기에 운전시간이나 근무시간을 늘리면 180여 명을 더 줄일 수 있다고 계산한 것 같다. 앞서 말한 근무환경 개선단 권고에 완전히 충돌하는 내용이다. 그러면 차장이나 기관사들의 노동환경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그런 일에 맞서기 위해 현재 서울교통공사노조가 준법운행 투쟁을 진행 중이고 파업도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장기현 : 매번 이야기하는 거지만, 안전에는 1%라도 허점이 있으면 안 된다. 평상시에는 문제가 안되지만, 돌발 상황이 발생할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는 큰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다. 대구 지하철 화재나 이태원 참사도 평상시에는 문제가 안 되던 것들이 한 순간에 복합적으로 맞아떨어지면서 사고가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2명이 탈 때와 1명이 탈 때는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하철 노동자들이 2호선 1인 승무와 인력감축에 반대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시면 좋겠다.
프레시안 : 서울시에도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장기현 :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 일에 있어서는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학자들에게만 연구용역을 맡긴 결과물로 인력감축 같은 정책을 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면 좋겠다.
프레시안 : 오늘 말씀 감사하다. 앞으로도 서울교통공사 노사 교섭 상황을 지켜보겠다.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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