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주필 |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도 좀 올려 달라.” 이전 부분개각을 앞두고 해외 순방에 나서던 윤석열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주문했었다는 말이다. 역으로 그간엔 후보군을 올릴 때 대통령의 거부감이 적은 이들을 추려 추천했다는 얘기겠다. 코드에서 벗어난 이들을 천거했다 대노(大怒)의 된서리 맞을 수 있었겠으니…. 장·차관 64명, 대통령 비서관 이상 50명 등 현 정부 조각의 핵심 114명은 서울대 출신 검사, 기재부 관료 출신이 주축이었다. 대통령과 같은 시험 권력이었다. 서울대(47%) 등 SKY 출신이 67%. 비서실장·국가안보실장, 기재·국방·환경·해양수산부 장관, 차관 8명 등 요직 47명이 거의 이명박 청와대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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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분수령 될 연말연초 개각 임박
대통령 사적 인연, 이념·정파 넘어
혁신창의로 규제 혁파할 인재 고대
성공 인사 근본은 대통령의 겸손·덕
‘학벌·검찰·관료·MB’ 기조는 이후에도 유지돼 왔다. 관료·검사들은 일상 관리엔 큰 부족함이 없을 자원이긴 하다. 1960~70년대 박정희의 관료들은 ‘조국 근대화의 첨병’이라는 기개, 자긍심도 충만했었다. 그러나 민간·기업이 상대적·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오히려 개혁과 변화를 꺼리는 규제와, 조직 이기의 방패 뒤로 숨어든 지 오래다. 상명하복 속에 “아니오”를 해 본 적도 드물다. 그러니 이너서클에선 여사 문제 같은 ‘뜨거운 감자’엔 함구가 일상일 수밖엔 없었다. “왜 의대 증원은 꼭 2000명이냐” “이종섭 장관을 왜 그리 서둘러 대사로 보내느냐” “회견 땐 진정성있게 제대로 사과 좀 하시라” “미워도 야당 손 안 잡으면 정책 추진 어렵다”는 이너서클의 고언이 사라진 이유 아닐까.
현장과 민심, 국제적 흐름보다 그분의 심기에만 주파수를 맞추다 함께 난국을 맞게 된 건 아닐지. 그러니 대통령의 최대의 적(敵)은 바로 인사권자인 대통령 자신이다. 그 다음 적은? 대통령실의 맹목적 추종과 장관들의 조직 기득권 보호다. 이재명의 야당이 아니라….
연말 인사를 앞둔 용산은 “사람 찾기 힘들다”고 한다. 그럴 터다. 우리 대통령의 마지막 1년은 불가피한 레임덕이다. 2026년 6월 지방선거가 그 기점이다. 연금·의료·노동 개혁, 일할 시간은 1년 반 남짓. 그 뒤론 총선·지방선거 공천에 대통령의 힘이 없고, 차기 대선 주자들에게 힘이 쏠린다. 영리한 엘리트들은 ‘윤석열 사람’ 꼬리표를 달가워하지 않을 터다. 그들의 최대 트라우마는 두 차례의 직전 정권 적폐 수사다. 어디 한직으로 숨었다가 차기 정권 인수위에 환하게 나타날 꿈을 꾸는 게 지금 공직 세태다.
그러니 이 정권에 절실한 건 널리 사람 구하는 ‘득인(得人)’이다. 돌려막기 풀로 난국 돌파는 어렵다. 노무현 대통령은 초대 인사보좌관으로 경남 거창고 교사, 광주 YMCA사무총장 경력의 ‘촌닭’ 정찬용을 앉혔다. 노 대통령은 “나는 정치·경제적으로 크게 빚진 게 별로 없다. 알아 보니 정찬용씨도 남한테 외상 많이 깔고 다니지 않았다고 합디다. 밥상 차리면 제 밥그릇만 챙길 사람은 아닌 게지요. 호남·영남 흙 두루 거쳐 왔으니 흙 속 진주 좀 찾아달라 했어요”라고 했다. 그 뒤 대통령이 마음에 둔 차관을 “문제 있다”며 정 보좌관이 거부했다. 그를 사무실로 소환한 노 대통령이 “지금 이건 막가자는 겁니까”라고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인사보좌관의 ‘사심’이 없었으니 결국 탈락이었다. 품성까지 보려 후보들 술자리 면접도 다반사였다. 진보와는 상극일 이헌재 경제부총리를 삼고초려해 입각시킨 그의 얘기. “하도 고사해 이 부총리 고교 후배인 유인태 수석까지 끌고 가 폭탄주를 쏟아붓고선 ‘행님, 고마 하랄 때 하이소’라고 겁박했다.” 사람 구하는 데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구나란 성찰쯤의 얘기겠다.
누가 집권하든 지금 대한민국 인사 쇄신의 으뜸은 묵은 감정과 원한의 악순환을 끊을 ‘석원(釋怨)’이다. “화끈하게 복수하라 뽑아 줬더니”라 부추기는 이들로 나라가 온통 ‘검찰·소송·탄핵’ 뿐이다. 대통령의 사적 연과 이념·정파의 굴레를 벗어나야 새로운 사람이 눈에 보인다. 그 좁은 용산에서만의 사람 찾기 루트를 획기적으로 확장해 가야 할 이유다. 쇄신의 다른 포인트는 격변의 AI 시대에 혁신·창의 마인드를 국정에 퍼뜨려 규제를 혁파해 줄 메기 같은 인재다. 고질적 갑질로 현장 원성이 가장 자자한 식약처,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은 최우선 혁신 대상일 수밖에 없다. 글로벌 마인드로 국제적 경쟁의 성공을 이끌어 온 민간의 기업·비즈니스 현장 출신이 이젠 국정 주도 세력으로 충원돼야 할 시대다. 백지신탁, 망신주기 청문회 탓에 어렵다고? 감복할 만큼 후보자와 야당 모두를 설득·조율하는 노력 역시 인사권자인 용산의 책무다.
인사 성공의 불변의 토대는 대통령 스스로의 겸손과 덕이다. 리더가 바르면 명령 없이도 따르기 마련이다. 자리가 준 권력보단 사람을 존중·설득하고, 아껴쓰는 품성 말이다. “내 사무실을 처음 찾은 어머니의 첫 얘기는 ‘그 탁자 위에 올린 발부터 치우라’였다. 지나고 보니 내가 모르는 게 뭔지 아는 것과, 내가 모르는 걸 아는 사람들을 구해 경청하는 게 가장 중요하더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재임 8년 뒤 회고였다. 역시 겸손과 인사다.
최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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