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 국내 최대 규모 회고전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 개막
수직으로 곧게 뻗은 나무 12그루에 TV 모니터 23대가 매달려 거대한 숲을 이룬 설치 작품 '케이지의 숲-숲의 계시'. 1993년 발표 당시 백남준은 오키나와 최북단 밀림 숲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이번 전시에선 한국에서 자생하는 다양한 수종과 식물을 미술관으로 옮겨왔다. /허윤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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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으로 곧게 뻗은 나무 12그루에 TV 모니터 23대가 매달려 거대한 숲을 이뤘다. 초록으로 뒤덮인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모니터 영상이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보인다. 백남준(1932~2006)이 1993년 발표한 대규모 설치 작품 ‘케이지의 숲-숲의 계시’. 예술적 스승인 작곡가 존 케이지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만든 작품이다. 기술과 자연은 충돌하는 게 아니라 공존하는 것이라 믿었던 백남준은 오키나와 최북단 밀림 숲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기술과 조화를 이루는 미래를 보여주고자 했다.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 백남준 사후 국내 미술관에서 개최하는 최대 규모 회고전이 부산에서 열린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지난 30일 개막한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은 백남준아트센터 소장품을 중심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 독일 프랑크푸르트현대미술관 등에서 빌려온 작품과 사진, 영상 등 160여점을 선보인다. 국내에서 백남준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백남준아트센터와 공동 기획한 전시다. 그동안 백남준을 대대적으로 조명하는 전시는 해외에서 많이 열렸지만, 정작 국내에선 백남준의 전 시기를 망라하는 회고전을 볼 수 없었다.
강승완 부산현대미술관장은 “평생 미술관에서 일해온 미술관인으로서 늘 부채감이 있었지만, 백남준 소장품이 한 점도 없는 미술관에서 백남준 전시를 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시도였다”며 “백남준아트센터가 처음으로 소장품을 대량 반출하는 결단을 내려 이번 전시가 가능했다”고 밝혔다. 초기부터 말년까지 시기별 주요 작품들을 망라해 시대를 앞서간 천재적 면모를 다각도로 보여준다.
백남준, '손과 얼굴'. 1961, 비디오, 흑백, 무성, 1분 42초. 백남준아트센터 비디오 아카이브. /부산현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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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1961년 퍼포먼스 비디오 ‘손과 얼굴’로 시작한다. 청년 백남준이 천천히 얼굴을 쓰다듬는 퍼포먼스 영상으로, 20대인 그는 이미 스스로를 하나의 매체로 인식하고 카메라 앞에 서 있다. 초기 백남준이 참여한 전위예술그룹 ‘플럭서스’의 퍼포먼스 작품을 시작으로 1965년 미국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자석 TV’,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과의 퍼포먼스를 위해 만든 ‘TV 첼로’ 등 텔레비전 작품들도 한자리에 모았다.
불상과 모니터가 마주 보고 앉은 'TV 부처'가 '달은 가장 오래된 TV'를 배경으로 단독 방에 전시된 모습. /허윤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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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과 모니터가 마주 보고 앉은 ‘TV 부처’ 연작은 가난한 예술가 백남준을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모니터 뒤편에 설치된 카메라가 부처를 실시간으로 찍은 모습이 TV 화면에 나타나고, 부처는 화면 속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는 구도다. 지난해 개봉한 다큐멘터리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엔 아내 구보타 시게코의 생전 인터뷰가 나온다. “어느날 남준이 불상 하나를 사왔길래 왜 사왔냐고 물으니 자기 생일이라 사왔대요. 마지막 남은 1만 달러였단 말이에요. 무슨 부처가 TV를 보고, 그걸 누가 사겠어요?” 그녀의 예상과 달리 작품은 곧바로 팔렸고 지금까지도 가장 사랑받는 백남준 연작이 됐다.
백남준, '로봇 K-456'. 1964(1996), PCB, 서보모터, 센서, 스피커, 앰프, 배터리, 원격 조종기, 팬, 철 구조물, 185×70×55cm.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부산현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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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새로운 매체에 도전하고, 누구보다 미래를 내다본 예술가였다. 백남준이 만든 다양한 로봇들도 곳곳에 놓였다. 백남준은 1963년 독일에서 첫 개인전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 여러 엔지니어와 교류하며 전자공학을 연구했다. 이때 처음 만든 로봇인 ‘로봇 K-456′이 삐걱대며 거리를 활보하는 영상도 볼 수 있다. 1993년 베네치아비엔날레 독일관에 전시됐던 ‘칭기즈칸의 복권’도 나왔다. 20세기의 칭기즈칸은 말 대신 자전거를 타고 있고, 자전거 뒤엔 네온으로 만든 기호와 문자가 채워진 텔레비전을 가득 싣고 있다. 미술관은 “백남준은 이 작품을 통해 교통 및 이동 수단을 통해 권력을 쟁취하거나 지배하던 과거와 달리 광대역 통신을 이용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미래가 올 것을 강조했다”고 했다.
백남준의 1993년작 '칭기즈칸의 복권'이 전시된 모습. /허윤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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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독일관에 전시됐던 '칭기즈칸의 복권' 뒷모습. /부산현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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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1995년작 로봇 '라이트 형제'가 전시된 모습. 개인 소장. /허윤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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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이 빅 브러더 기술을 통제해 디스토피아가 도래하리라 지목했던 1984년 첫날, 백남준은 역설적으로 기술이 만들어낸 유토피아를 펼쳐냈다. 백남준이 지휘한 세계 최초 쌍방향 위성 생중계 쇼의 제목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 강승완 관장은 “이미 60여 년 전 백남준은 인터넷과 글로벌 미디어, 스마트폰과 소셜 네트워크의 시대를 예견했다”며 “백남준은 기술 미디어를 이용한 정보의 연결과 확산을 통해 지역과 시대, 종교와 사상을 초월한 인간 간의 소통과 통합을 꿈꾸었다”고 말했다.
2000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선보인 레이저 작품 ‘삼원소’를 전시장 마지막 방에서 볼 수 있다. /허윤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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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마지막 방에 설치된 백남준 작품 '108번뇌'. 1998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 처음 소개된 작품으로 8·15 광복, 6·25 전쟁부터 당시 대중문화를 대표했던 서태지와 아이들까지 한국의 격변을 108개의 모니터로 빠르게 보여주는 대작이다. /허윤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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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마지막에는 2000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선보인 레이저 작품 ‘삼원소’를 선보인다. 백남준은 레이저를 ‘포스트 비디오’라 칭하며 시공간의 개념이 레이저로 다시 변화할 것을 내다봤다. 맞은편 방에는 108개의 TV 모니터를 통해 한국의 격변을 보여주는 대작 ‘108번뇌’가 설치됐다. 8·15 광복, 6·25 전쟁부터 전통 부채춤과 승무, 당시 대중문화를 대표했던 서태지와 아이들까지 50분짜리 영상이 섬광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1998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위해 작가가 특별 제작한 작품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모니터를 재정비하고 수복해 전시했다.
방대한 전시장을 끝까지 돌고 나면 문득 궁금해진다. 그가 아직 살아있었다면 92세. 인공지능과 메타버스 시대에 백남준이라면 또 어떤 미래를 예견하며 새 길을 내딛었을까. 전시는 내년 3월 16일까지. 무료.
1992년 경주를 방문한 백남준. /사진작가 이은주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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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과 비디오 아트
쇤베르크 음악으로 도쿄대 미학과 졸업 논문을 썼다. 1956년 독일로 건너가 전자음악과 텔레비전을 이용한 예술 방식을 모색했고, 1963년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을 통해 비디오 아티스트의 길에 들어섰다. 처음으로 텔레비전을 완전하게 예술에 도입한 전시였지만 당시엔 평단도 대중도 이해하지 못했다. 1964년 ‘TV 방송의 본고장’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로봇, 조각, 설치와 비디오를 결합했고, 1969년 비디오를 자유자재로 편집할 수 있는 ‘백 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를 개발했으며, 음악과 신체에 대한 탐구까지 더해 독보적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부산=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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