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30 (토)

반도체의 지정학-트럼프 시대의 미·중 반도체 경쟁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High-Tech Powers]'배터리 전쟁' 저자 루카스 베드나르스키 고정 칼럼
<15>반도체의 지정학-트럼프 시대의 미·중 반도체 경쟁

머니투데이



많은 사람들은 트럼프가 중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가진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2025년 1월 그의 취임 이후 미중 기술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다. 이러한 이미지는 두 가지에서 비롯했다. 하나는 트럼프가 지난 30년간 다른 어느 미국 대통령들 보다 더 직접적이고 강조된 수사(rhetoric)를 썼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돼 헤드라인을 장식한 시기가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트럼프 정부에서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경쟁이 악화돼 첨단 기술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거란 예상이 정말 맞을까? 이러한 예상을 평가하기 위해 역사적 맥락과 트럼프의 최근 발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중 반도체 전쟁, 트럼프 아닌 오바마 정부에서 시작

많은 이들은 미중 기술경쟁을 미중 무역전쟁에서 직접적으로 비롯된 것으로 본다. 그 시작은 지난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면 반도체 전쟁의 시작은 조금 더 이전인 오바마 대통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2015년은 중국의 미국 내 반도체 기업 인수가 활발했던 마지막 해다. 2016년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은 필립스가 중국 인수 희망자에게 33억 달러 규모의 발광다이오드(LED) 사업을 매각하는 것을 막았다.

이 금지 조치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본질적으로 조명 회사인 필립스의 매각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왜 그렇게 민감한 사안일까? 그리고 어떻게 미국이 네덜란드가 소유한 회사의 매각을 금지할 수 있을까? 안보상의 이유로 인수를 금지하는 기관인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는 그 근거를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LED가 반도체로 분류되는 만큼, 인수 대상이 매우 중요한 반도체 지식재산권(IP)을 소유하고 있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두 번째 질문에 답하자면, 소유주가 네덜란드인이라고 해도 LED 사업부는 물리적으로 캘리포니아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CFIUS가 모든 권리를 갖는다.

이 인수 시도 이후로 중국 인수 희망자들의 상황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실리콘 밸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이전까지 중국 자본이 반도체 회사를 인수하는 것이 가능했다. 아시아소사이어티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3년 사이에 캘리포니아에서 148건의 중국 첨단기술 투자가 이뤄졌다. 그러나 첫 번째 금지 조치 이후, 관련 당사자들은 CFIUS의 개입 가능성을 예상하며 점점 더 신경을 곤두세우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후에 CFIUS의 개입이 현실화했다. 매각측은 인수 희망자가 중국자본일 경우 CFIUS가 개입해 시간과 돈이 낭비될 가능성을 감안해 이를 보상하기 위한 프리미엄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대통령 과학기술자문위원회라는 전문가 그룹에 의뢰해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의 장기적 리더십 확보'라는 획기적인 보고서가 발표된 것도 오바마 대통령 시절이다. 이 위원회에는 미국 주요 반도체 기업의 임원 및 이사회 멤버, 은행 및 방위 기업의 고위급 대표, 정부 기관장, 저명한 학자 등이 포함됐다. 위원회의 주요 권고 사항은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는 산업 정책에 맞서 싸우자는 내용이었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결코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에서 경쟁한 적이 없고, 현재도 그렇지 않다는 평가와 함께다. 미국 정부는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시장의 힘에만 의존하여 최적의 결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게 위원회의 강조 점이었다. 이 보고서는 중국에 대한 반도체 관련 제재를 권장하지 않았지만, 장기적으로 높은 경쟁력과 혁신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지원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더 광범위한 바이든의 반도체 대중 제재…트럼프는 무역협상 지렛대로 한정


오바마가 취했던 접근 방식은 트럼프 대통령 아래서 계속됐다. 미국과 해외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 기업이나 자본이 참여하는 인수합병이 차단됐다. 미중 반도체 경쟁에서 처음으로 제재를 수단으로 삼은 게 트럼프 대통령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제재는 매우 선별적이었고 주로 화웨이, ZTE 등 일부 기업에 국한됐다. 또한 이들 기업이 북한과 이란에 연루된 혐의에 대한 처벌이기도 했다. 바이든 정부의 2022년 제재처럼 중국 반도체 산업 전반의 발전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ZTE와 화웨이가 특히 5G 네트워크 구축에 필요한 인프라 장비 분야에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영향은 상당했다. ZTE와 화웨이는 이 분야에서 서구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트럼프의 제재로 인해 이러한 발전이 멈췄고, 당시 시장에서 이들 기업의 생존 자체가 의문시됐다.

바이든 제재의 목표는 중국의 AI 발전을 늦추고 이 분야에서 서구의 우위를 위협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지만, 트럼프의 제재는 특정 결과를 조건으로 한 것이었다. 트럼프는 광범위한 무역 협상에서 ZTE와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활용했다. 반도체 경쟁은 바이든 정책의 중요한 요소였지만, 트럼프에게 반도체 제재는 미중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고 국내 시장 보호주의에 기반한 미국 제조업 부흥을 목표로 하는 광범위한 무역 전쟁의 협상 카드로 사용됐다. 트럼프의 미국 제조업 부흥은 규제 완화, 값싼 에너지 공급, 공급망의 미국 복귀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유권자의 상당수가 거주하는 오하이오·인디애나·미시간 등 미국 러스트벨트 지역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중공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이든에게 미국 제조업의 부흥은 (미국에 투자가 절실히 필요한) 인프라 재생과 배터리, 태양광 패널, 희토류, 반도체, 전기차, 의료 장비 등의 첨단 기술 산업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미국 제조업 부흥이라는 목표는 매우 비슷하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대부분 달랐다.

한편, 트럼프가 집무실로 복귀하면서 중국은 무역 전쟁 재개에 대비하고 있다. 미중 경쟁의 초점은 다시 첨단 기술에서 소비재, 원자재 및 부품 무역으로 옮겨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중국산 제품에 다시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그는 높은 관세가 미국의 수요를 중국산 제품에서 미국산 제품으로 전환시키고 외국 제조업체들이 이를 피하기 위해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도록 장려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광범위한 논쟁 속에 반도체는 다시 한 번 지렛대이자 협상 카드가 될 거라 예상할 수 있다.

트럼프에게 관세는 가장 선호하는 경제 및 외교 정책 수단인 것 같다. 실제로 그는 사전에서 '관세'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관세 비용이 사실상 판매세로 전환돼 미국 소비자가 부담하게 되거나 시장에서 상품 선택의 폭이 줄어든다는 비판을 무시한다. 그는 관세가 미국에 더 많은 제조업을 유치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며, 이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가 부정적인 효과보다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회의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가 공약을 제대로 이행한다면 이는 지난 100년 동안 가장 큰 경제 실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트럼프, 칩스법은 반대 안 할 가능성 …반도체 경쟁, 주변 이슈로 밀려 날수도

트럼프는 또한 청정 기술의 공급망 개발에 많은 도움이 돼 온 인플레이션감소법(IRA)을 폐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그의 불신과 미국이 화석 연료와 기존 자동차 산업의 값싼 에너지를 기반으로 경쟁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가 보기에 화석 연료와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벗어나는 것은 중국에 너무 많은 이점을 제공한다.

그럼에도 그는 '미국을 위한 반도체 생산 유인을 창출하는 법'인 반도체법(Chips Act·칩스법)의 정책에는 반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미국 내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외국 제조업체를 유치하며, 현재의 경쟁 우위를 활용하는 것은 트럼프가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반도체법은 이 모든 측면에서 성과를 제공한다. 이 법은 국내 반도체 생산을 강화하고, 외국 기업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도록 구체적인 유인책(보조금과 세액 공제)을 제공하며, 일자리를 창출하고,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이 중국에 대해 갖고 있는 현재의 우위를 활용한다.

바이든 대통령 임기 말에 이르러, 이른바 성숙 노드(22㎚ 이상)에서의 미중 경쟁 문제가 더 자주 거론되기 시작했다. 전 세계 대부분의 전자제품은 가장 작은 첨단 반도체가 아니라 성숙한 반도체 기술을 기반으로 작동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금까지 경쟁의 초점은 첨단 반도체에 맞춰져 있었지만, 중국은 이 성숙 반도체 기술에서 상당한 역량을 개발하며 서방을 뒤처지게 만들고, 이로 인해 중국에 대한 새로운 의존 구조를 구축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 문제를 조사하고 이를 상쇄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보였다.

이 성숙 노드가 반도체 경쟁의 새로운 전선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이것이 차기 행정부의 관심사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개인적으로는 회의적이다. 경쟁의 초점이 첨단 기술에서 대외 무역 균형의 변화로 이동한다면(참고로 이는 중국뿐 아니라 EU도 포함된다), 레거시 반도체(첨단 제조공정을 활용하지 않는 반도체·일반적으로 28㎚ 이상)와 같은 작지만 중요한 문제들이 필연적으로 레이더에 포착될 것이다. 향후 4년 동안 반도체 산업에서의 경쟁은 대체로 현재 수준을 유지하며, 중심 이슈에서 점차 주변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행정부는 필요에 따라 이 문제를 재검토할 가능성이 있지만, 이를 독자적인 정책 목표라기보다는 협상의 도구로 사용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이 칼럼에서 표현된 견해와 의견은 전적으로 필자 개인의 것이며 소속회사의 것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필자와는 Twitter에서 @LithiumResearch를 팔로우하거나 hitechcolumn@gmail.com으로 연락할 수 있습니다.

루카스 베드나르스키 S&P글로벌 수석 애널리스트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