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21년 2월 24일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바이오의약품 등 4개 품목에 대한 공급망 조사를 지시하는 행정명령 14017호에 전격 서명하면서 반도체를 들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바이든 행정부가 이르면 다음 주 반도체 관련 중국 제재를 추가로 내놓는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사실상 바이든 행정부서 내놓는 마지막 대중(對中) 반도체 제재가 될 것으로 본다. 미국 정부의 선택에 따라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모양새가 됐다. 우리 반도체 업계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
애매한 제재? 미국의 셈법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SMIC. 사진 셔터스톡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블룸버그는 지난 27일(현지시간) 여러 소식통을 인용해 바이든 행정부가 이르면 다음 주 대중 추가 반도체 수출 규제를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당초 알려진 것보다 미국의 규제 범위는 축소되는 분위기다. 최근 기술 자립에 나선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SMIC를 비롯해 화웨이의 주요 공급망이 새롭게 제재 목록에 오를 전망이지만 상당수 중국 반도체 기업은 여전히 블랙리스트 그물망에서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이는 중국 반도체 기업을 고객으로 둔 램리서치‧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 등 미국 반도체 장비 기업들이 바이든 행정부에 로비를 펼쳤던 영향으로 분석된다. 이들 기업의 중국 매출 비중은 40%가 넘는다. 제재로 인해 중국에 장비를 팔지 못하게 되면 실적 추락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미 정부를 상대로 ‘필사의 로비’를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 등 외신들은 “반도체 제조 장비들이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언뜻 애매해 보이는 미국의 제재 뒤 전략적 포석이 깔려있다는 평가도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I 등 고성능 반도체와 최종 칩 생산만 확실히 틀어쥐면 된다는 게 미국의 전략”이라며 “레거시(구형) 칩과 반도체 장비를 풀어주면 오히려 중국 반도체 산업이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의 AI 반도체 회사와 장비 업체에 종속될 수 있다는 계산까지 반영된 것”이라 말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며 도쿄일렉트론(TEL)‧네덜란드 ASML 등 미국 이외의 주요 반도체 장비회사 주가가 강세를 보이기도 했다.
━
메모리는 안 막는다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에 위치한 CXMT의 반도체 공장. 사진 CXMT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중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 발전을 막겠다”는 기조에 바이든‧트럼프 행정부 뜻이 일치한 상황이지만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좀처럼 웃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조준점에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가 보이지 않기 때문. 당장 중국 최대 D램 생산업체 CXMT(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는 블랙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CXMT는 올해 구형 D램인 DDR4 등을 저가에 풀면서 메모리 시장에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AI를 제외한 시장 전반의 수요가 여전히 부진한 가운데 CXMT와 YMTC(양쯔메모리)가 생산량을 늘리면서 범용 D램‧낸드플래시 가격은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29일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의 11월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전달보다 20.59% 내린 1.35달러로 올해 가장 낮은 수준이다. 낸드 범용제품(128Gb MLC) 역시 지난달보다 29.8% 떨어졌다.
이미 ‘정해진 미래’가 된 중국 D램 업체의 물량공세를 막아내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모양새다. 앞서 시장 기대치를 밑도는 3분기 성적을 낸 삼성전자의 ‘실적 쇼크’ 역시 중국 메모리의 공습 탓이었다. 삼성전자는 실적발표 당일 이례적으로 “중국 메모리 업체의 구형제품 공급 증가로 실적이 하락했다”며 별도 입장을 냈다. 중국의 메모리 추격은 삼성전자는 물론, 고대역폭메모리(HBM) 중심의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비교적 빠르게 갈아탄 SK하이닉스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지난 14일 부산 해운대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열린 ‘2024년 국제반도체제조기술학술대회(KISM 2024)’에서 최정동 테크인사이츠 수석부사장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과 기술을 주제로 기조연설하고 있다. 사진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더구나 중국 AI 산업의 발전을 막기 위해 미국의 ‘깨알 같은’ HBM 수출제한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시름은 더 깊어지고 있다. 반도체 전문 조사기관 테크인사이츠의 최정동 수석부사장은 “현재 중국에서 주로 사들이고 있는 2세대 HBM2‧3세대 HBM2E는 대부분 삼성전자, 일부는 SK하이닉스에서 생산된 칩”이라며 “만약 수출제한이 걸리면 일정 부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 메모리 반도체의 공세는 한국 입장에서나 골칫거리지, 솔직히 미국에서는 생각만큼 큰 문제가 아닐 것”이라면서 “우리 반도체 업계도 이제는 중국 리스크에서 벗어날 독자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