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양극화 해소'를 거론했다. 한국경제의 고질적 병폐를 해결하겠다니 반길 만한 일이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뜬금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그동안 윤 정부의 정책 방향이 양극화 해소와는 거리가 너무도 멀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과연 양극화를 해소할 만한 '준비'가 돼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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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관가에선 주요 정부 부처 공무원들이 연말이라 해야 할 업무도 많은데, 대통령실로부터 내려온 '특별 오더'까지 처리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그 특별 오더란 양극화 해소의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해소할 정책을 마련하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앞서 11월 11일 윤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임기 후반기에는 소득ㆍ교육 불균형 등 양극화를 타개하기 위한 전향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22일에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조찬기도회에 참석해 "정부 전반기에는 민간 주도 시장 중심 기조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했다면 후반기엔 양극화 타개로 국민 모두가 미래에 희망을 갖고 각자 국가 발전에 열심히 동참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 국정 기조를 '양극화 해소'로 잡고, 이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밝힌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같은 날 국민통합위원회의 위원장과 통합위 분과위원장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윤 대통령은 "국민 통합도 양극화를 타개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임기 후반기 국정 목표가 '양극화 해소'라는 걸 명확히 밝힌 셈이다.[※참고: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취임 2주년 기자회견 자리에서도 양극화 해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국정 기조로 내세운 건 아니었다.]
우선 윤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조차 '대ㆍ중소기업 양극화 해소' 외엔 양극화를 언급한 적 없다. 그조차도 중소기업의 낮은 노동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것으로, 구인난ㆍ자금조달ㆍ임금수준 등을 개선하는 일반적인 대ㆍ중소기업 양극화 해소와는 다른 의미다.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친 이후 역대 대통령이 한결같이 양극화(혹은 빈부격차) 해소를 전면에 내세운 것과는 다르다.
게다가 양극화 해소는 지금까지 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 방향과도 다르다. 윤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작은 정부'와 '큰 시장'을 추구했다. 윤 정부가 감세와 규제 완화를 강조한 것도, 정부 재정지출을 확 줄인 것도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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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정부의 역할은 분배에, 시장의 임무는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양극화는 성장의 열매를 골고루 분배하지 않았다는 뜻인데, '큰 시장'을 강조하면서 양극화를 해소한다는 건 어찌 보면 모순이다.[※참고: 정부는 물론 '낙수효과'를 기대하고 있지만, 철 지난 이론에 불과하단 지적이 더 많다.]
되레 '69시간 노동' 주장, 실업급여 지급기준 강화 등으로 노동약자를 궁지로 내모는 정책을 폈다. 청년내일채움공제(청년층의 초기경력 형성 지원), 내일배움카드(직업훈련 지원), 국민취업지원제도, 장애인직업능력개발 등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지원하는 사업의 내년도 예산을 대폭 삭감한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예다.
사례는 또 있다. 대ㆍ중소기업 노동자 간 임금 격차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다는 점이다.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 대비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 비율은 2018년(52.8%)부터 2020년(57.5%)까지 꾸준히 상승하며 개선됐다.
하지만 팬데믹 여파로 2021년(54.5%) 잠깐 하락했는데, 이후엔 회복하지 못하고 더 떨어졌다(2022년 2023년 모두 53.6%). 정부는 경제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는데, 임금 격차는 줄어들지 않았다는 거다.
그뿐만이 아니다. 취약계층의 안정적 주거환경을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공공임대주택을 늘려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정부 재정에 부담이 된다는 게 이유였다.
이런 상황에 정부는 내년에 건설임대주택 공급량을 올해보다 1만5000호 더 늘어난 5만호로 확대하겠다면서도 관련 예산(5조2866억원)은 3872억원 줄이는 역설적 행보를 띠고 있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양극화는 대체 무얼 의미하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양극화 해소에 진정성이 있느냐는 의문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사실 의중보다 중요한 건 성과다. 그러기 위해선 준비가 필요하다. 어떤 준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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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앞서 언급한 것들을 거꾸로 돌리면 답은 쉽게 나온다. 그동안 윤 정부의 정책 방향은 양극화 해소와 거리가 멀었다. 따라서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정부가 좀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재원 확보가 필수다. 현재 상황에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다.
이런 상황에서 올바른 양극화 해법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국민 모두가 국가 발전에 열심히 동참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의욕을 잃지 않고 열심히 뛰어야 한다" 등 윤 대통령의 발언을 꼼꼼히 뜯어보면 엉뚱한 양극화 해소 정책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언제나 그렇듯 '준비되지 않은 정책'은 더 큰 화를 부른다. 섣부른 정책이 커다란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다. 양극화 카드를 꺼내든 윤 대통령은 준비가 돼 있을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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