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지난 21일 철도노조가 서울역 앞에서 12월 총파업 돌입 예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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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억원의 체불 임금 지급하라.”
최근 ‘준법 투쟁’을 벌이고 있는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이 다음 달 5일 무기한 파업 돌입을 예고하면서 코레일과 정부에 요구한사항은 크게 6가지다.
먼저 ▶정부 기준에 따른 기본급 2.5% 정액 인상 ▶231억원의 체불 임금 해결 ▶4조 2교대 완전 전환 ▶신규노선 위탁 중단 및 부족인력충원이 있다. 또 ▶과도한 감시와 처벌 중단 ▶공정한 승진제도 도입도 포함된다.
대부분 그동안 철도 노사 간에 계속 논의되고 쟁점이 됐던 사안들이다. 그런데 체불 임금을 해결하라는 요구는 이례적이다. 대형 공기업인 코레일이 임금을, 그것도 230억원이 넘는 금액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건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29일 철도업계와 철도노조 등에 따르면 임금 체불 논란은 기획재정부의 공기업 경영평가(경평)에 따른 ‘성과급’과 직접 맥이 닿는다. 공기업들은 매해 임직원에게 줄 임금에서 일정 부분을 떼서 따로 적립했다가 경평 결과에 따라 이를 다시 지급한다.
결과가 좋으면 더 많이 주고, 나쁘면 기본액만 받는다. 사실상 원래 받아야 했을 임금을 지불받는 거지만 성과급이란 명칭 탓에 마치 별개로 주는 보너스로 오해받곤 한다. 코레일은 지난해 경평에서 하위권인 ‘D’를 받았다.
대전역에 있는 코레일 본사 사옥.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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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평 결과는 최고인 S 등급부터 시작해 A, B, C, D, E 등급까지 나뉜다. C 등급 이상부터는 기본액 외에 기본급의 100%에서 250%까지 더 지급되기 때문에 공기업 임직원들은 경평 등급에 꽤나 민감하다.
지난해 평가에서 D 등급을 받은 코레일은 추가분 없이 기본액(기본급의 200%)만 지급해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통상적인 성과급 지급 기준은 기본급의 100%이지만 코레일은 기재부 방침에 따라 기본급의 80%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코레일은 성과급을 기본급의 100%가 아닌 88% 기준으로 지급했다. 12%만큼 덜 준 것으로 이 금액이 코레일 전체(약 3만명)로 보면 약 231억원에 해당한다.
코레일은 기재부 방침을 따랐다지만 철도노조로선 지난 2018년에 맺은 단체협약(기본급의 100% 기준으로 성과급 지급) 위반이기 때문에 임금체불을 주장하는 것이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단협 위반이 노동 관련 법상 처벌 대상이지만, 그렇다고 기재부 방침을 어겼다간 또 다른 불이익이 우려되는 탓에 코레일 경영진이 상당히 곤혹스러운 입장인 걸로 안다”고 전했다.
이렇게 코레일만 특별한 사례가 된 사연은 지난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앞서 기재부는 공기업들에 각종 수당 등이 포함된 복잡한 임금체계를 단순화하라고 권고했다.
그리고는 2010년 1월 성과급 기준이 되는 기본급을 더 올리지 말라는 내용의 공기업 예산운용지침을 발표했다. 대부분 공기업은 이 지침에 앞서 격월로 정기 지급하던 상여금 등을 포함해 기본급을 증액했다.
공기업에 대한 경영평가와 임금 등은 기획재정부가 담당한다. 사진 기획재정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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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코레일은 2009년 철도파업 등으로 인해 노사 협의가 늦어진 탓에 2010년 말에야 상여금 300%를 기본급에 산입했다. 1년가량 지각한 셈이다. 그러자 기재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향후 성과급 지급 시 과거 수준에 맞춰서 주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해서 정해진 게 기본급의 80% 기준이었다. 이후 코레일은 2011년부터 2017년까지 7년간 기본급의 80%를 기준으로 성과급을 지급해 왔다.
코레일은 과거 철도청 시절의 영향으로 현장인력 등에 대한 각종 수당이 많은 대신 기본급 비중(임금 총액 대비 65.4%)은 상대적으로 낮아 30여개 공기업 중 최하위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실제 성과급 수령액이 더 적어지면서 직원들 사이에 불만이 쌓였고, 2018년 당시 오영식 사장이 상여금이 포함된 기본급의 100% 기준으로 성과급을 주기로 노조와 합의했다.
이후 코레일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성과급을 노사합의대로 지급했다. 그런데 2021년 감사원이 코레일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기감사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기재부가 2019년부터 성과급 산정기준이 되는 기본급여 범위에서 ‘통상임금’을 삭제토록 예산편성지침을 냈는데 코레일이 상여금이 포함된 기본급의 100%로 성과급을 준 건 부적정하다고 감사원이 지적한 것이다.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는 게 대법원 판결이다.
철도노조는 지난 18일부터 준법투쟁을 벌이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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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당시 코레일은 기재부와 사전에 협의를 거쳤다고 주장했지만, 이와 관련한 증빙자료는 제출하지 못했다. 결국 이러한 내용을 감사원이 기재부에 통보했고, 기재부는 2022년 말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어서 그해부터 2026년까지 성과급 기준을 매년 4%씩 단계적으로 감액하라고 결정했다.
2022년에는 기본급의 96%, 2023년엔 92%, 2024년엔 88%, 2025년 84%를 거쳐 2026년에 다시 80%로 원상복귀 하란 얘기다. 그래서 지난해 경평 결과로 올해 지급한 성과급 기준이 기본급의 88%가 됐고, 거액의 임금체불 논란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철도노조의 정현철 정책국장은 “2010년 당시 다른 공기업보다 늦게 임금구조를 바꾼 부분이 지침 위반이라는 지적을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일정 기간 불이익을 주면 되는데, 지난 7년도 모자라 앞으로도 계속 벌을 받으라고 하는 건 너무 지나친 처사”라고 지적했다. 철도노조는 그동안 성과급 관련 불이익이 4000억원에 달한다고 추정한다.
익명을 요구한 철도업계 관계자도 “지각하고 숙제를 늦게 낸 학생에게 그에 합당한 처벌을 하는 게 아니라 아예 무기정학 처분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판이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18년 이후 입사한 직원의 경우 그나마 기본급의 100% 기준으로 성과급을 받다가 갑자기 대폭 깎이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며 “코레일 경영진이 회사를 운영하는 데도 막대한 지장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도 이러한 상황이 과도한 제재라는 지적을 어느 정도 수긍하는 분위기로 기재부와 협의해 가능한 한 해결책을 찾아보겠다는 입장이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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