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대선 기간 "나는 김정은, 푸틴과 모두 잘 지냈다"며 '독재자 조련사'를 자처했다. 그런 그가 유럽과 중동의 분쟁 및 한반도 긴장 등을 우선 안정시킨 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겨누는 시나리오를 짜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정상회담을 가졌을 당시의 모습.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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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모두 시작점은 '+α'
로이터통신은 이날 "트럼프 정권 인수팀은 이런 새로운 외교 노력을 통해 북한과 무력 충돌 위험을 줄일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이런 정책 논의는 유동적이며 트럼프 당선인이 최종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트럼프는 그간 여러 차례 김정은과 친분을 과시하며 대북 관여 의지를 드러냈다. 2018~2019년 대북 협상 국면에서 실무를 맡았던 알렉스 웡 전 대북특별부대표를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에 지난 22일 지명한 것은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트럼프가 원한다면 알렉스 웡은 (북ㆍ미) 대화를 이끌어낼 자격을 갖춘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며 “트럼프와 긍정적 관계를 맺어온 김정은은 새로운 협상에 열린 자세일 것”이라고 중앙일보에 말했다.
다만 대화가 시작되더라도 협상 시작점부터 난관이 예상된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핵심 원인은 협상의 '최종 목표'를 비핵화로 설정하는 문제였다. 트럼프는 이미 알려진 영변과 풍계리 외 핵시설 세 곳, 즉 ‘영변+알파(α)’를 거론했지만, 김정은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트럼프는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노 딜'을 선택했다. '협상의 달인'이라는 그가 당시 김정은에게 요구했던 '+α'를 이제 와서 포기할 거라 보긴 어렵다
지난 2019년 2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전날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된 것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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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작부터 양보할 수 없는 것은 김정은도 마찬가지다. 지난 9월 우라늄 농축 시설을 대외에 최초로 공개할 정도로 그간 쌓아온 핵·미사일 역량에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최근 "협상으로 미국과 갈 수 있는 곳까지 다 가봤다"(지난 22일, 조선중앙통신)며 트럼프 2기 행정부와 기싸움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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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견제 카드 쌓기
이처럼 녹록지 않은 북·미 협상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트럼프가 또 다시 김정은과 대화에 나선다면 이는 단지 북핵 문제에 국한되지 않은 다목적 포석일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황과 최근 북·중 및 북·러 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대 경쟁자인 중국을 압박하려는 시나리오의 일환일 가능성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트럼프가 러시아를 이용해 중국을 견제하는 이른바 ‘역(逆) 닉슨(reverse-Nixon)’ 독트린을 활용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1970년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전략적으로 손을 잡았는데, 트럼프는 반대로 푸틴의 손을 잡고 시진핑을 압박하는 구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7년 방중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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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트럼프는 패권 도전국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닉슨의 대중 전략을 역으로 모방하며 푸틴과 김정은을 끌어들이려 할 수 있다"며 "푸틴과 시진핑, 그리고 트럼프 사이에서 김정은의 고심이 깊어질 것이고 한반도를 둘러싼 방정식이 굉장히 복잡해지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도 "트럼프는 김정은과 푸틴을 활용해 시진핑의 변화를 이끌어내거나 그를 고립시킬 수 있는 전략적 효과를 노리는 것으로 보이다"며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전쟁, 북핵 문제, 중국과 대결 등 주요 과제를 단계적으로 접근해 해결하려고 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트럼프가 궁극적으로는 푸틴과 김정은 각각에 협상력 투사를 시도하며 동시 제압에 나설 수도 있다. 북·러가 서로 '뒷배' 역할을 하며 버티는 것을 막기 위해 먼저 투항하는 자에 더 많은 보상을 약속하는 '죄수의 딜레마'처럼 푸틴과 김정은 사이를 벌려 각기 자신과 더 좋은 조건에 합의하는 데 목 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트럼프의 측근으로 꼽히는 프레드 플라이츠 미국우선주의정책연구소(AFPI) 부소장은 지난 7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백악관에 복귀한 뒤 김정은과 푸틴을 떼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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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종전 변수도 된 北
지난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의 차시브야르 마을에서 우크라이나군 24기계화여단 소속 병사가 러시아군을 향해 152㎜ 자주포를 발사하고 있다. REUTERS=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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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수차례 호언장담했던 '취임 직후 우크라이나 종전'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른 시일 내 대북 관리는 필요하다. 트럼프 2기 외교력의 첫 시험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될 가능성이 큰데, 파병까지 하며 존재감을 키운 김정은이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상황이 꼬일 경우 바이든 행정부 취임 초기 혼란과 희생을 자초했던 '아프가니스탄 철군 작전'(2021년 8월)처럼 거센 국내외적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트럼프는 바이든의 당시 실책에 대해 "미국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순간"이라고 조롱했다.
다만 트럼프가 대북-대러 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지 못한 채 북핵 문제를 사실상 외면할 거란 회의론도 존재한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인수위원회 외교분과를 이끌었던 제임스 카라파노 헤리티지재단 선임고문은 최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다시 추진하고 싶어하겠지만 NSC(국가안보회의) 최우선순위에는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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