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건물 앞에 경찰 깃발이 날리고 있다. 한수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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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두고 “일반화할 수 없다”며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앞으로 수심위원 명단을 공개하라는 요청이 있어도 공개하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법조계 일각에선 경찰이 법원의 판결 취지를 무시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은 지난 25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모든 사건에 적용된다고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수심위원) 명단 공개는 개인정보 유출 등 부작용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비공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해 A씨가 강원경찰청장을 상대로 수심위원 명단 등을 공개하라고 낸 소송에서 서울고법이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하자 상고했다. 대법원 1부(주심 노경필 대법관)는 지난 14일 이 사건을 심리불속행 기각하면서 원심을 확정했다.
☞ 대법 “경찰 수심위 명단 공개해야”…불공정 시비 줄어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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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이 판결이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대법원에서 심리 대상이 아니라고 결론 난 것”이라며 “사실관계를 대법원에서 확정해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상고심법 4조를 보면, 대법원은 민사·가사·행정 소송에서 원심판결에 문제가 없고 상고 이유가 없으면 사건을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데 이를 심리불속행 기각이라고 한다.
대법원이 사실관계를 확정해준 게 아니라는 경찰의 주장은 사실일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심리불속행 기각은 대법원이 그 사건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정해준 것은 아니다”라며 “심리를 통해 논증해 판단한 것은 아니기에 대법원 판례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하급심에서 따라야 하는 선례라고 보진 않지만, 하급심에서도 대법원의 방향성을 보고 판단에 참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심리불속행 기각 역시 대법관의 엄격한 검토 끝에 나오는 결론 중 하나라는 점에서 판례에 준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 8월 퇴임한 김선수 전 대법관은 26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심리불속행 제도도 원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판단을 한 것”이라며 “판례 변경 대상으로서의 판시는 아니지만, 원심이 타당하다고 본 것을 대법원이 확정한 것은 맞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내용이라면 같은 판단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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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과 비슷한 사례도 있다. 2009년 서울고법은 사면심사위원회 명단 공개를 거부한 법무부의 결정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이듬해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원심판결이 확정됐다. 이후 법무부는 위원회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 특사 남용 막게 사면위원 명단 공개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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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수심위원 명단 공개 거부가 정당하다고 판단한 하급심 판결도 있다고 맞선다. 실제로 지난 2월 청주지법, 2019년 대구지법은 수심위원 이름을 비공개한 것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항소 없이 1심이 그대로 확정돼, 항소심에 이어 대법원 단계에서 확정된 이번 판결과는 차이가 있다.
대법원이 수심위원 명단 공개 사건과 관련한 판례를 새로 제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대법원 관계자는 “정보공개청구에 관한 법리는 비슷하다”며 “수심위 자체에 대한 관심 때문에 주목을 받긴 하지만 특별한 법리가 제시돼야 할 사건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경찰이 비공개 처분을 고수하면 수심위원 명단을 공개하라는 다른 요청도 소송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대법원이 확정한 판결을 폄하하거나 비공개 처분을 공언한 경찰의 태도가 법의 취지를 무시하는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최근 다른 사안에 대해 설명하면서 “한국은 대법원 판례를 개별 사안으로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 “한국은 판례를 개별 사안 판결로 본다”는 경찰청장···맞는 말일까[팩트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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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심리불속행 제도는 상고의 남용을 막아 조속한 권리 실현을 이루기 위해 도입됐다”며 “수심위원 명단 공개 소송은 다른 쟁점이 발생할 이유가 거의 없다. 경찰이 법원에서 패소하더라도 공개하지 않겠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국민의 알 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여러 사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하급심의 판결이 확정된 것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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