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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내년 국교정상화 60주년인데…일본 '세계문화' 두번째 뒤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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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광산 인근에서 한국인 노동자를 기리기 위한 한국 정부 주최 추도식이 열렸다. 지난 7월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연례 추도식을 약속한 일본이 진정성 없는 태도로 일관, 한국이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행사는 둘로 쪼개졌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불참에 "유감"을 표하고, 한국은 일본의 조치가 "합의한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맞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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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희 주일한국대사가 25일 오전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소재 사도광산 조선인 기숙사 터 제4상애료에서 열린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유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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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에 강제 동원…가혹한 노동"



이날 오전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사도광산 인근 조선인 기숙사였던 '제4상애료' 터에서 한국 정부가 주최하는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이 열렸다. 한국에서 온 유족 9명을 비롯해 박철희 주일 한국 대사와 대사관 관계자 등 약 30명이 참석한 가운데 행사는 추도사 낭독, 묵념,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박 대사는 추도사를 통해 "80여년 전 사도광산에 강제로 동원되어 가혹한 노동에 지쳐 사라져간 한국인 노동자분들의 영령에 머리 숙여 깊은 애도를 표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오늘 이 하루가 가혹한 환경 속에서 고통을 겪으신 모든 한국인 노동자들을 기억하는 진정한 추모의 날이 돼야 한다"면서다.

박 대사는 또 "영영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 안기지 못하고 돌아가신 한국인 노동자의 한스러운 마음, 귀국 후 사고 후유증과 진폐증으로 힘든 삶을 이어간 분들에게는 어떤 말도 온전한 위로가 될 수 없을 것"이라며 "사도광산의 역사 뒤에는 한국인 노동자분들의 눈물과 희생이 있었음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정은 약 10분 만에 종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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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 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에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차관급) 및 참석자들이 추모 묵념을 하는 가운데 한국 정부 관계자 및 유가족의 자리가 비어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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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사도 사라져…사과·강제성 인정 없어



당초 사도광산 등재 당시 한·일이 합의한 대로라면 이처럼 조선인 노역의 '강제성'을 짚고 애도하는 추도사는 사실 전날 일본 측이 주최한 추도식에서 일본 당국자가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전날 추도식 식순에서는 추도사가 아니라 아예 '인사말'로 명명됐다.

앞서 일본은 추도식을 이틀 남긴 지난 22일 제2차세계대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이 있다고 보도된 이쿠이나 아키코(生稲晃子)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을 보내겠다고 통보했다. 정부는 당초 이를 수용했다가 이튿날인 23일 '이견'을 이유로 불참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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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유족들이 25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열린 추도식을 마친 뒤 갱도를 찾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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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타협 않겠다" 뒷북



이와 관련, 외교부는 일본 측 추도식이 마무리된 뒤 "한국이 (일본의 추도식에 불참하고) 자체 추도 행사를 개최하는 건 과거사에 대해 일본 측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의 표명"이라고 출입기자단에 밝혔다. 그러나 애초에 협상 과정에서 목소리를 분명히 내지 못하고 일본이 추도식을 왜곡할 빌미를 내준 뒤 사실상 '뒷북' 대응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처럼 일본이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알리겠다"는 약속을 사실상 저버린 이상 향후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맞대응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번 사태가 돌발성 악재로 끝나지 않고 한·일 간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그래서 나온다.

특히 한국으로선 두 차례나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일본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됐다. 앞서 일본은 2015년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 때도 강제노역 역사를 충분히 알리겠다고 약속한 뒤 꼼수를 거듭했다.

이와 관련, 주고베 총영사를 지낸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은 일본이 물컵의 절반을 채워주길 기다리고 있지만, 일본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선 아주 조금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가 벽에 다다른 느낌이며 전환점을 찾고 궤도 조정을 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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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참배는 오보" 日 매체 정정보도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사도광산 추도식에 한국이 불참한 데 대해 "한국 측이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입장은 아니지만, 한국 측이 참가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역과 협력해 한국 정부와도 정중히 의사소통을 해 왔다"면서다.

그는 또 "(이쿠이나 정무관이)취임 이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 측에 사실관계를 설명했다"고도 말했다.

이와 관련, 2022년 8월 교도통신은 이쿠이나 정무관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고 보도했지만, 이날 정정보도를 게재했다. 교도통신은 "이쿠이나 정무관이 (야스쿠니 신사) 경내에 들어갔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본인 확인을 하지 않고 보도했다"며 오보를 인정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교도통신이 정정보도를 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만 정부가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추도식 불참 결정은 제반 사정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소극적 대응에 대한 비판이 일자 외교부는 이날 밤 8시30분쯤 추가로 입장을 냈다. 하야시 장관의 유감 표명 등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정부가 불참하기로 한 데에는 일본 측 추도사 내용 등 추도식 관련 사항이 당초 사도광산 등재시 합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고 부연했다.

실제 이는 이번 사안의 본질이 아니다. 한국의 추도식 불참 결정은 단순히 이쿠이나 정무관의 이력 문제가 아니라 한국인 강제징용에 대한 사과를 담는 등 추도사의 진정성을 담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야스쿠니 참배 문제를 '진실 게임' 양상으로 몰아가며 한국이 과잉반응했다는 듯 본질을 왜곡하는 형국이다.

내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어렵사리 개선한 양국 관계가 동력을 유지하려면 양국 모두 기조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일본은 과거사 문제에 보다 성의를 표시해야 하고, 한국은 일본의 신의에만 기대거나 과거사 문제의 무게감을 경시하는 안일한 접근법을 버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일본이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전후 세대에 사죄를 하지 않게 하겠다는 '아베 담화'에 갇혀있어 일본 국내정치가 한·일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과거사 갈등이 되풀이되면 내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관련 사업도 한국이 생각하는 만큼 긍정적으로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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