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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신령스러운 어룡이 연꽃 위에… 고려에서 만개한 ‘푸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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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고려 상형청자展’

신령스러운 어룡(魚龍)이 연꽃 위에 앉아있는 국보 ‘청자 어룡모양 주자’가 도입부에 놓였다. 어룡은 용과 물고기가 결합된 상상의 동물. 머리는 살짝 위로 들고, 꼬리는 한껏 치켜올려 U자 형태를 만들었다. 용도는 주전자. 꼬리 뚜껑을 열어 액체를 담으면 어룡의 입으로 액체가 나오는 구조다. 박물관이 용량을 계산해 보니 0.8L, 소주잔으로 치면 16잔까지 담겼을 것으로 추정됐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6일 개막하는 특별전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象形靑磁)’는 고려청자 중에서도 상형청자를 독립 주제로 다루는 첫 전시다. 상형청자는 인물·동물·식물 등의 형상을 본떠 만든 청자를 말한다. 아름다운 비색(翡色) 유약과 빼어난 조형성으로 고려청자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청자 사자모양 향로’ 등 국보 11건, 보물 9건을 포함해 국내 25개 기관과 개인 소장자, 중국·미국·일본 3국 4개 기관의 소장품 총 274건이 출품됐다.

12세기 고려청자 절정기에 탄생한 국보 ‘청자 어룡모양 주자’가 상형청자의 미감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애령 학예연구실장은 “구슬처럼 툭 튀어나온 눈알에 검은 철화점을 찍어 눈동자를 완성했고, 눈 밑에는 마치 화장할 때 셰딩(shading)하는 것처럼 유약을 두껍게 해서 입체감을 더했다”며 “투명한 유약에 두께의 차이를 세밀하게 줘서 입체감을 주는 기법이 놀랍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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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청자 사자모양 향로'. 고려 12세기, 높이 21.2㎝, 국립중앙박물관(개성1).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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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주변국의 문화를 창의적으로 변용해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한 유연한 나라였다. 중국 도자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고려만의 미감으로 완성한 결정체가 상형청자다. 1123년 고려를 찾은 북송 사신 서긍(1091~1153)은 ‘고려도경’에서 “산예출향(狻猊出香·사자모양 청자 향로) 역시 비색이다. 위에는 쭈그리고 있는 짐승이 있고 아래에는 연꽃 받침이 그것을 받치고 있다. 여러 그릇 가운데 오직 이 물건만이 가장 정교하고 뛰어나다”고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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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원앙모양 향로뚜껑'. 고려 12세기, 높이 12.0㎝, 국립중앙박물관(덕수506).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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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청자 연꽃모양 향로 조각과 청자 원양모양 향로뚜껑 조각. 중국 허난성 보풍 청량사 여요, 북송 12세기, 높이 각 14.7㎝, 12.4㎝, 허난성문물고고연구원.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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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동시기 북송대(960~1127) 중국 자기들을 함께 전시해 비교할 수 있게 했다. 특히 북송 황실 자기를 생산했던 중국 허난성 청량사 여요(汝窯) 출토품과 비교하면, 고려 상형청자의 투명한 비색과 섬세한 조형성이 돋보인다. 이애령 실장은 “고려인들이 상형청자라는 놀라운 예술적 성취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결정적 비결은 비색 유약이었다”며 “투명도가 높은 고려의 비색 유약은 상형 기물의 입체감과 정교한 세부 묘사를 살리는 데 필수 요소였다. ‘청자 귀룡모양 주자’는 깊이 파인 부분의 유약 층이 두꺼워서 비색이 더 짙어 보이고, ‘청자 원숭이모양 묵호(먹을 담는 항아리)’는 투명한 비색 유약 덕분에 얼굴의 미소가 살아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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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새를 탄 사람모양 주자'. 고려 12~13세기, 높이 17.7㎝,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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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가 전시된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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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형태의 상형청자를 모은 3부가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귀를 쫑긋 세운 토끼 세 마리가 향로를 등에 지고 있는 국보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조롱박 형태의 주전자 손잡이에 개구리가 앉아있는 국보 ‘청자 양각·동화 연꽃무늬 조롱박모양 주자’, 상상의 동물 기린이 향로 위에 앙증맞게 앉아있는 ‘청자 기린모양 향로’ 등이 관람객을 맞는다. 과학적 조사로 밝혀낸 상형청자의 제작 기법도 인터렉티브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다. 내년 3월 3일까지. 입장료 성인 5000원. 개관 첫 일주일(26일~12월 2일)과 설날 연휴, 12월과 2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은 무료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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