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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헌재의 인생홈런]‘제주살이’ 이광환 감독 “중문 바닷가 걸으면 심신이 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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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이광환 전 LG 감독이 제주 중문해수욕장 바닷가를 맨발로 걷고 있다.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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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프로야구 4개 팀(OB, LG, 한화, 히어로즈) 감독을 지낸 이광환 전 감독(76)은 몇 해 전 건강 검진에서 폐 섬유화가 진행 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는 가장 먼저 담배를 끊었다. 그리고 곧바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공기 좋은 제주로 향했다.

대구 출신인 그에게 제주는 제2의 고향이었다. 1982년 가족 여행차 찾은 제주에서 우연히 바닷가 앞에 있는 집을 구매한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1990년대 말 그는 제주 서귀포시에 ‘야구인의 마을’을 조성했다. 또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다양한 야구 관련 자료 등을 바탕으로 한국 최초의 야구박물관인 ‘한국야구명예전당’도 만들었다. 서귀포시는 2005년 강창학체육공원 부지 안에 야구장을 조성했는데 그때도 자문을 맡았다. 이 야구장은 2008년 그가 초대 사령탑으로 부임한 우리 히어로즈의 창단 첫 전지훈련지이기도 했다.

그는 제주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 1년에 한 번 검사를 받는데 폐 섬유화가 더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결과를 받았다. 서귀포에 있는 치유의 숲과 중문해수욕장이 그의 ‘병원’ 역할을 한다. 주말이면 편백 가득한 치유의 숲을 걷고 또 걷는다. 올여름부터는 중문해수욕장 모래사장에서 맨발 걷기를 한다. 하루에 한 시간가량 바닷가를 걷는다. 그는 “촉촉한 모래사장을 맨발로 걷다 보면 심신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며 “바닷가의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하는 어싱(Earthing·땅과의 접촉)이 요즘 내 건강 비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주에 온 이후 올해까지 5년째 한 초등학교의 어린이보호구역 교통안전 지킴이 봉사도 하고 있다. 오전 7시 반부터 10시 반까지 초등학생들의 안전한 등교를 돕는다. 그는 “처음 왔을 때 콧물 흘리던 1, 2학년 아이들이 이제는 어엿한 고학년이 돼 있다”며 “아이들이 커 가는 걸 보는 게 기쁨이자 즐거움”이라며 웃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육성위원장 시절 티볼 보급에 앞장섰던 그는 제주 지역에서 실시되는 티볼 강습에도 참여해 손자뻘 아이들과 구슬땀을 흘린다.

50년 가까이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인연을 맺었던 많은 사람이 제주에 살고 있는 그를 찾는다. 특히 그의 도움으로 자리를 잡은 여자 야구 선수들과 서울대 야구부 출신들이 꾸준히 연락한다.

10년간의 서울대 야구부 감독 생활에 대해 그는 “야구를 통해 예의와 인성을 가르치려 했다. 야구에는 협동심, 인내심, 희생정신이 모두 필요하다”며 “야구를 못한다고 팀에서 내보낸 적은 없지만 팀플레이를 하지 않고, 협동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애들은 모두 다 내보냈다”고 했다.

지도자 생활 내내 그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여러 차례의 감독 계약으로 받은 돈 대부분을 야구박물관 건립 등을 위해 썼다. KBO 육성위원장 등을 맡았을 때는 판공비 거의 전부가 제자들의 식사 비용으로 나갔다.

서귀포시는 강창학야구장(현 서귀포야구장)에 그만을 위한 은행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야구장 주변엔 야자수가 대부분인데 유일하게 은행나무 한 그루가 야구장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심겨 있다. 이 전 감독은 “사는 데까지 건강하게 사는 게 이제 남은 꿈”이라며 “나중엔 은행나무가 되어 언제까지나 좋아했던 야구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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