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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詩想과 세상]우리라는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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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거짓말의 길이에 대해서 생각한다
차 벽을 향해 걸어가면서

거짓말의 밑바닥은 몇 마리인지 세어본다
차 벽을 두고 돌아오면서

잊어버리면 픽 웃으며
한 발자국에 한 마리씩
다시 한 마리

꿈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우리라는 말이
광장에 뿌려졌을 때
이걸 선물이라 좋아해야 할지
이걸 폭탄이라 두려워해야 할지 몰랐지만

우리는 꿈에도 사라진 희미하고
뚜렷한 우리가 되어서
차 벽을 향해 걸어가고
차 벽을 두고 돌아온다

우리라는 슬픔을 완성하기 위해서
너무 오랫동안 쌓여서
끝도 보이지 않는 슬픔을 완성하기 위해서

안주철(1975~)


어느 겨울 우리는 광장에 나갔고, 차 벽을 향해 걸어갔다. 자꾸만 늘어나는 “거짓말의 길이”에 대해 생각하면서. 차 벽을 부수기 위해 장미꽃을 던졌다. 가로막힌 것들이 조금씩 무너졌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가 되어갔다. 마침내 쓰레기통 속에서 장미꽃을 피워냈다.

그 높은 차 벽으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리 왔나. 괴물들이 다시 돌아오는 오래된 저녁마다, “거짓말의 밑바닥”에 달라붙은 벌레들이 몇 마리인지 세어본다. 우리가 만든 이 반복되는 슬픔. 하늘을 다 가려버린 차 벽이 우리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위태로운 골목길을 지나 다시 광장에 간다. 마음에 일어나는 천둥과 번개들. 차곡차곡 쌓인 거짓의 멸망을 위해 심장에 불을 하나씩 켠다. 거짓을 태우러 간다. 붉은 노을 한 장씩 들고 간다. “끝도 보이지 않는 슬픔”으로 우리는 좀 더 어두워진 길을 간다. 거짓의 벽을 넘어 “우리라는 슬픔을 완성”하기 위해서.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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