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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저항하길 멈추고, 인플루언서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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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소셜미디어나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인플루언서’라고 하는데, 이들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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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
신조어에 저항했지만 패배
격변 시기, 저항과 투항 사이



누가 그랬다. “인플루언서시잖아요?” 20년 기자 경력이 눈앞에서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인플루언서라니. 대체 인플루언서란 무엇인가. 인터넷에서 높은 인지도를 얻은 사람을 퉁쳐서 일컫는 단어다. 주로 소셜미디어나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칭한다. 나도 이제는 나이가 들었다는 걸 알겠다. 새롭게 등장하는 단어들을 몰라서가 아니다. 새롭게 등장하는 단어들에 어쩐지 좀 저항하고 싶어져서다. 새로운 것에 저항하고 싶어진다는 건 꼰대가 되어간다는 소리다. 어쩔 도리 없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꼰대가 된다.



격렬하게 저항하고 싶었던 첫 번째 단어는 크리에이터였다. 인터넷 뉴스 미디어에서 일하던 시절 유튜브 관계자들을 만났다. 그들이 말했다. “인기 크리에이터들이 많으니까 협력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 눈은 동태가 됐다. 크리에이터라는 단어가 유튜브 시대에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몰랐던 탓이다. 크리에이터는 창작자라는 의미다. 세상에는 수많은 창작자가 있다. 가수도 크리에이터다. 영화감독도 크리에이터다. 작가도 크리에이터다. 세상에는 크리에이터가 너무 많다. 인터넷 미디어에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들만 콕 찍어 크리에이터라고 부르는 건 인류 역사상 많은 것을 일구어 온 창작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그렇다. 나는 틀렸다. 유튜브 등에서 활동하던 크리에이터들은 연예인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얻기 시작했다. 기존 연예인도 저마다 유튜브 채널을 열며 크리에이터가 됐다. 유튜브 수익이 더 높은 연예인도 생겼을 것이다. 나는 시대를 읽지 못했다. 기자라는 족속의 특징이 그렇다. 최후의 순간까지 새로운 미디어에 저항하는 성향이 있다. 나름 새로운 유행을 잘 받아들인다고 생각해 온 나 같은 늙은 힙스터도 이 모양이다. 그러니 “인플루언서시잖아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손뼉을 치며 기뻐했어야 옳다. 요즘 세상에 누가 기자 따위를 좋아하는가 말이다. 기자라는 직업은 인플루언서라는 직업 앞에서 패배했다. 완벽하게 패배했다.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철기 시대로 진입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청동 무기만 쓰다가 멸망한 부족의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는 여전히 저항하고 있다. 어느 날 쇼트 폼,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스타그램 릴스를 보다가 갑자기 부아가 치밀었다. 나는 옷을 좋아한다. 패션에도 상당히 집착하는 편이다. 패션잡지 기자로 잠깐 일한 경력도 있다. 자연스레 내 인스타그램 알고리듬은 패션 관련 인플루언서들의 영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놈의 알고리듬은 저항해 봐야 소용없다. 당신 관심사와 취미를 정확하게 알아채서 24시간 투척한다. 오전에 친구와 이야기한 상품은 오후가 되면 당신의 소셜미디어에 광고라는 형태로 등장하고야 만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더니 낮말도 밤말도 스마트폰이 듣는 시대가 됐다. 조지 오웰의 ‘1984’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현실화된 것이다.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인스타그램이 강제로 던지는 패션 인플루언서라는 사람들의 영상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그들은 매일 새로운 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서서 ‘당신들도 나처럼 입으면 옷 잘 입는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주장했다. 한 패션 인플루언서 영상을 보다가 나는 스마트폰을 집어 던지고 싶어졌다.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그가 입은 착장은 이치에 맞질 않았다. 패턴이 화려한 셔츠에 패턴이 화려한 재킷을 입고 패턴이 화려한 스카프를 매고 있었다. 심지어 바지에도 패턴이 있었다. 패턴이 화려한 아이템은 서로 충돌하기 때문에 섞지 않는다는 건 일종의 기본이다. 그는 “너무 과하게 입지 않는 것이 포인트”라고 하면서 모든 것을 너무 과하게 입고 있었다. 사람들이 저런 걸 좋아하고 따라 할 리가 없지. 나는 또 틀렸다. 그 영상에는 “오늘도 많이 배웠습니다” “역시 믿을 만한 센스” 같은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협찬 광고도 있었다. 이 인플루언서는 이걸로 영향력뿐 아니라 돈도 벌고 있는 것이다.



자연스레 알고리듬은 비슷한 일반인 패션 인플루언서들의 영상을 투척하기 시작했다. 패션 관계자는 없었다. 평범한 직장인이나 학생들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그들이 패션 좀 안다고 오랫동안 뻐겨 온 전문가들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진 이유는 분명했다. 친근함이다. 그들은 옆집 형이나 언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벌이와 감각을 지닌 인플루언서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사람들은 더는 가르치는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나와 닮은 사람을 원한다. 나와 닮은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소개하고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기를 원한다. 당신 아버지가 심지어 정치부 기자인 당신에게도 매일매일 정치 유튜버의 영상을 카톡으로 보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젠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미디어를 선택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팩트를 선택할 수 있다. 아니, 도대체 팩트란 무엇인가. 패턴이 화려한 아이템을 여러 개 매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오랫동안 팩트였다. 더는 팩트가 아니다. ‘조그마한 디올 파우치’가 명품백이라는 것도 오랜 팩트였다. 더는 아니다.



우리가 알던 시대는 우리 손바닥 안에서 무너지고 있다. 어쩌면 이미 무너졌을 것이다. 나는 저항하기를 멈추기로 결심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결심했다. 나는 인플루언서가 되어야겠다. 수명이 길어져서 앞으로 30년은 더 일해야 하는데 오르지 않는 원고료만으로 살아남기는 곤란한 시기가 분명히 오고야 말 것이다. 기자라는 직함은 빨리 버려야 한다. 평론가라는 직함은 이미 멸종위기종이다. 요즘은 행사나 강연도 인플루언서들이 섭외 일 순위다. 가만 생각해 보니 오십 대 이상 중년을 위한 패션 인플루언서는 아직 별로 없다. 2년 후면 나도 오십 대가 된다. 아직 희망은 있다. ‘광화문 집회에서 너무 튀지 않으면서 센스 있게 돋보이는 착장’을 첫 콘텐츠로 한다면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한겨레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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