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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짓눌린 기업가정신]금융 규제샌드박스 5년…체감도 여전히 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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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금융규제 샌드박스 시행 이후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이 잇따랐지만 '속 빈 강정'에 머무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의 망분리 규제가 여전한 탓에 시장에서 테스트할 수 있는 금융서비스가 많지 않아서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총 56건의 혁신금융서비스를 신규 지정하고 9건의 규제개선 요청을 수용했다. 지난 2019년 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시행된 후 현재까지 총 293건의 혁신금융서비스가 규제 특례를 받았고, 이 가운데 169건이 시장에서 시범 운영됐다.

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는 ICT기술,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발전에 따른 금융산업의 변화에 대응하고 규제로 인한 사업화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한시적인 규제 특례를 부여하는 제도다. 새로운 금융서비스의 시장 테스트를 허용해 정교하고 안전한 금융규제를 설계하기 위한 취지다.

혁신금융서비스 3분기에만 187건 신청…전자금융/보안에 집중



올해 3분기에도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신청 건수는 187건에 달했다. 전자금융/보안 분야가 32건(17.1%)으로 가장 많았고, 자본시장 분야(10건‧5.3%), 여신전문분야(4건‧2.1%), 대출 분야(4건‧2.1%), 데이터분야(3건‧1.6%), 보험분야(2건‧1.1%) 등이 뒤를 이었다.

문제는 지난 5년간 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의 성과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10년째 유지되고 있는 망분리 규제로 인해 새로운 IT기술이 도입되기 어려워서다. 디지털 전환 등 시대의 흐름에 맞춰 금융 플랫폼의 진화가 요구되고 있지만 낡은 규제에 발목 잡혀 제자리걸음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형 금융지주사와 시중은행들은 법적 한계로 혁신금융서비스를 이용해 새로운 비금융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관련 규제 탓에 업계 경쟁력에서 뒤쳐진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서비스인 리브엠, 대표적인 서비스인 신한은행의 음식 배달 플랫폼 '땡겨요', NH농협은행은 꽃배달(올원플라워), 우리은행은 기업 디지털 공급망(원비즈플라워) 등이 대표적이다. 이

제도적 한계에 비금융 서비스 '수박 겉핥기'



국내 금융회사들은 자체적인 통합 플랫폼 상에서 다양한 서비스들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현행 규제로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계열사 간 개인 고객의 금융 정보 공유가 어렵고, 현재의 통합 앱 상에서 은행, 보험, 카드, 증권 등의 개별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별도의 앱을 설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제2차 금융규제 혁신회의에서 ▲은행의 통합 앱 운영을 부수 업무로 허용 ▲통합 앱을 통한 계열사 서비스 제공 ▲고객의 사전 동의를 받은 경우 계열사 등에 고객 정보 제공 허용 ▲지주 내 체계적인 통합 앱 운영이 가능하도록 지주회사가 통합 앱 기획·개발, 관리·유지 업무 등을 수행할 수 있도록 허용 등 규제 완화 방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제도 개선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이 마련되지 않은 만큼 혁신적인 금융서비스가 출시되긴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김재우 삼성증권 연구원은 "금융회사가 아무리 양질의 앱을 만들더라도 금융에만 국한된 플랫폼만으로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가 점차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며 "향후 관건은 속도감 있는 제도개선 여부"라고 강조했다.

이어 "금융사들의 비금융사 지분 투자 등에 대한 제도개선도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며 "지난해 신한금융지주가 올해 여름 출시를 목표로 추진했던 유니버셜 간편 앱의 출시 연기가 이 같은 제도개선 지연을 방증하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국내 금융 규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되는 것만 빼고 모두 비허용'하는 데 있다. 이 같은 포지티브 규제 탓에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를 내놓기 쉽지 않다는 게 금융권의 입장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한 은행은 통합 앱에서 고객 맞춤형 카드, 보험, 증권 등 다양한 상품 추천을 위해 고객정보를 계열사 간 공유하고자 했지만 가로막혔다. 개인정보 이용에 대한 고객의 동의를 받기가 어려운 데다 고객 동의를 받더라도 실질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데 제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마다 1000만명을 웃도는 고객으로부터 제3자 정보제공 동의를 한꺼번에 받아야 하기 때문에 계열사 간 고객정보를 공유하는 게 쉽지 않다"며 "현재 금융사들의 고객정보는 영업과 마케팅 목적으로 활용할 수 없고, 고객정보 공유에 대한 통지비용과 불어나는 고객 민원까지 고려하면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또 다른 빅테크 회사는 은행의 신용평가 업무를 상거래 정보 활용이 가능한 플랫폼에 위탁하려 했으나 규제 샌드박스 적용으로 밀려났다. 은행의 부동산 담보평가 업무를 부동산 가치 빅데이터를 보유한 IT 기업에 위탁하려 한 빅테크 회사도 사업화하지 못했다. '본질적 업무'를 위탁할 수 없다는 현행 규제에 발목이 묶여서다.

관건은 망분리 개선 로드맵 구체화



따라서 금융위가 올해 8월 내놓았던 금융분야 망분리 개선 로드맵을 토대로 각종 규제 해소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앞서 금융위는 로드맵을 통해 금융회사의 생성형 인공지능(AI) 활용을 허용하고 클라우드(SaaS) 이용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등 연구개발 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간다는 방침을 밝혔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위탁용역보고서(디지털 금융시대 금융법 현대화)를 통해 "디지털 금융은 혁신을 유발하고 이용자 편익을 가지는 측면이 있지만 신기술 기반의 혁신성은 예견하기 어려운 손해나 기존 규제 내지 시장 질서에 대한 영향력 등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기존 규제 체계가 혁신을 가로막고 이용자 편익을 저해하는 것으로 작동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혁신과 규제 일관성, 소비자 보호와 시장 건전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며 "혁신 기술의 등장 속도가 갈수록 빨라져 신속하게 법 제도로 포섭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공적 규제가 아닌 자율규제를 활용하는 규제기법의 모색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국내의 금융회사들이 자율적이면서 유연한 정보보안체계를 운영할 만한 역량을 갖췄다고 평가하긴 힘들다"며 "금융회사에 정보보안에 관한 내부통제 시스템 강화를 요구하고, 중요 보안 사항에 대한 경영진의 의무를 높이는 방향으로 조직체계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유연한 시스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복잡한 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이 충분하지 못하다면 그 피해는 금융소비자들에게 전가될 위험이 크다"며 "규제 샌드박스를 적극 활용해 금융회사들에게 시간을 충분히 부여하고, 자율적인 정보보안 관리에 필요한 노하우를 쌓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경보 기자 p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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