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시장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는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사상 최대 실적으로 영업이익률은 무려 40%에 달했다. 제조기업으로선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수치다. AI(인공지능) 거품론이 무색하게 승승장구하며 AI 메모리 1강(强) 구도를 공고히 했다.
옆집 삼성전자는 배가 아프다. 확정 실적은 오는 31일 발표할 예정인데 반도체 부문은 SK하이닉스에 밀릴 것으로 보인다. 영업이익률은 14%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경쟁사와 비교해 하늘과 땅 차이다. 고부가 반도체를 판매하는 AI 시장에 대응하지 못한 결과다.
반도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HBM에서 갈렸다. '큰손' 엔비디아의 최대 공급사는 SK하이닉스다. 삼성전자는 아직도 주요 공급망에 들어가지 못했다. HBM 주력 제품인 HBM3E 8단의 경우 SK하이닉스는 3월부터 공급했으나 삼성전자는 퀄테스트(품질 검증) 문턱도 넘지 못했다.
삼성 반도체의 위기는 늦어지는 의사결정, 실패에 대한 두려움, 단기적 이익 추구, 후진적 조직문화, 월급 도둑, 경영진의 무능, 조직 간 소통 단절, 책임 의식 부재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이중 기술경쟁력 상실은 삼성전자의 자존심마저 무너뜨렸다.
위기의 중심은 D램이다. HBM은 D램을 위로 쌓아 만들 뿐 결국 D램의 일종이다. 그런데 삼성전자 D램이 AI 반도체에 맞는 성능을 내지 못하면서 엔비디아를 고객사로 확보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가 세계적 반도체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건 D램 때문인데 D램 경쟁력이 퇴보하면서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는 뜻이다.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잠정 실적 발표 후 "고객과 투자자, 임직원에게 송구하다"며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쳤다"고 말했다. 전례가 없는 실적 사과문을 통해 그가 강조한 건 기술과 품질이었다. 이를 생명이라고까지 했다. 업황이 문제가 아니라 기술 부재로 실적이 부진했다고 표현했던 것이었다.
30년 전 이건희 회장은 '애니콜 휴대폰 화형식'을 지시했다. 불량 휴대폰 논란에 꺼내든 충격 요법이었다. 화형식을 바라본 직원들 머리에는 '품질확보'라는 머리띠가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 만든 휴대폰을 잿더미로 만들고 해머로 난도질도 했다. 정신 무장을 통해 30년 후 '갤럭시 신화'가 탄생했다.
삼성 반도체는 점유율만 1등일 뿐 1등 반도체라 얘기하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 영원한 1등은 없다고 하지만 AI 반도체 시장에선 퍼스트팔로어 신세다. 내년 양산이 예고된 HBM4로 역전을 노린다고 하는데 퀀덤점프가 가능할까. 치료는 약으로만 해선 안 된다. 수술이 필요하다. 그것도 팔다리부터 머리까지 이어지는 대수술이 필수적이다.
김현호 기자 jojolove7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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