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의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30대 여성 기자가 야구 붐을 바라보는 짧은 연재 “‘얼빠’ 아니고 ‘야빠’인데요”를 시작합니다. 안타가 뭔지도 모르던 ‘야알못’이 어떻게 ‘야빠’가 되었는지, 야구장 ‘큰 손’이 된 여성 관객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떤지 함께 이야기 나눠 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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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왜 그 팀을 응원해?”
주위의 야구 팬들에게 물었습니다. 답은 다양했습니다. 아빠가 어릴 때부터 팬이었다, 모태 신앙은 없어도 ‘모태 구단’은 있는 집안이다, 모 선수의 경기를 보고 빠지게 됐다, 팀 마스코트가 귀엽다, 우연히 경기를 ‘직관’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고향 팀이라서다… 여러 답변을 종합해 보면 ‘입덕’에는 크게 세가지 루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영향, 선수의 영향, 그리고 지역의 영향이요.
프로야구(KBO) 리그 10개 구단 중에서 NC 다이노스라는 팀을 응원하게 된 것도 이런 요인이 조금씩 겹쳐 있습니다. 그중에서 제일 큰 부분은 아마 ‘지역 연고지’라는 점일 겁니다. NC는 경남 창원을 연고로 2011년 창단한 팀인데요. 저는 그곳에서 태어나 19년간 살았습니다.
[‘얼빠’아니고 ‘야빠’인데요] “야구 룰은 다 아냐”고요?…룰 모르는데 경기를 어떻게 보나요
“사람은 나면 서울로 가야지.”
스무 살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창원에서 가장 많이 들은 얘기였습니다. 그것이 정답이라 여겼습니다. ‘서울에 가면 지금과는 뭔가 다른 멋진 세상이 펼쳐질 거야.’ 막연히 생각했죠.
NC 다이노스 선수들이 2020년 11월 24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0 신한은행 SOL KBO 한국시리즈 6차전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해 창단후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후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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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누가 “그럼 너 창원 가서 살래?”하고 물어본다면 쉽사리 “응”이라고 대답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고향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거기서 잘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지역을 바라보는 감정은 그곳에서 나고 자란 저 역시 이중적입니다. 유년기를 추억할 수 있고 울타리 같은 곳이지만, 한편으로 오래전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곳이기도 하거든요.
무엇보다 지방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게 어렵다고 느껴집니다. 바뀌지 않는 건 학교 운동장과 매점, 문방구만이 아닙니다.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관습, 보수적인 문화도 여전하죠. 일자리도, 문화 콘텐츠도, 눈에 띄는 역사 유적도 없고 사람들의 인식이 잘 바뀌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그 결과는 ‘지방 소멸’이죠. 서울과 수도권으로 가는 청년 여성들이 남성보다 많고, 그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내가 자란 지역이 여러 방면에서 잘 됐으면 좋겠다, 모든 것이 수도권 중심인 이 사회가 조금은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일단 답은 없고 딱히 돌파구도 보이지 않는다.’ 그게 고향을 떠나온 제가 멀리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입니다.
지난 8월 25일 창원NC파크에서는 경기에 앞서 경남 지역 유소년 야구단의 합동 졸업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NC는 지역 야구 꿈나무들을 위해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원하고 있다. NC 다이노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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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야구를 보면서 하나의 답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글에서 여성 스포츠 팬들을 바라보는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 대해서 썼는데요.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남겨주셨습니다.
“의외로 야구 흥행 인기 요인으로 지방에서도 붐인 건 별로 안 짚어지는 것 같은데요, 수도권 외 지역인 지방에서도 차별받지 않는, 수도권/지방팀이 모두 리그에 소속되어있으니 지방에서도 동일하게 향유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다. 이런 시각도 있어요!”
제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와 겹치는 이야기였습니다. 현재 10개 구단 중 수도권팀이 5개(서울·인천·수원), 다른 지역팀이 5개(대전·대구·부산·광주·창원)죠. 강원도와 제주도를 빼면 구단이 전국에 흩어져 있고, 연고지에 따라 라이벌전을 부르는 별명도 많습니다.
잠실 더비(LG 트윈스-두산 베어스), 낙동강 더비(NC-롯데 자이언츠), 달빛 시리즈(삼성 라이온즈-KIA 타이거즈), 클래식 씨리즈(롯데-삼성), 엘롯라시코(LG-롯데) 등이요. 수도권이 아닌 여러 지역의 다양한 조합을 보면 ‘그래, 서울 밖에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살지’ 같은 새삼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우리는 지금 장난 아니거든?’
지난 10월 28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5차전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KIA가 삼성에 승리하며 통합우승을 달성한 뒤 KIA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광주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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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올해 KBO리그는 최근 몇 년 중 가장 ‘지역적(?)’이었습니다. 정규시즌 1·2위를 나란히 차지하며 한국시리즈(KS)에 진출한 KIA와 삼성은 모두 비수도권팀이었는데요. 수도권 아닌 팀끼리의 한국시리즈는 2006년 삼성-한화 이후 처음입니다.
2015년까지만 해도 ‘비서울’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으면 7전 4선승제 게임에서 5~7차전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진행했습니다. 관중들이 가장 많다는 이유 때문이었겠죠.
이런 서울 중심적인 희한한 제도도 2016년부터 폐지되고, 올해는 영호남의 대표팀이 상위권을 차지하면서 야구의 중심이 지역으로 옮겨왔습니다. 전국 팬들이 ‘광주 KIA챔피언스필드’와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로 몰려들어 인근 상권과 숙박 업체들도 특수를 누렸죠.
지난 10월 15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4 프로야구 신한 SOL뱅크 KBO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2차전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7회말 무사 주자 1루 상황에서 삼성 김헌곤이 2점 홈런을 치고 세리머니하며 그라운드를 달리고 있다. 대구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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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G는 KIA의 오랜 팬인데요. 그에게도 올해 우승의 순간은 유달리 특별했습니다. ‘광주에서 태어나고 보니 자연스럽게 KIA 팬이 된’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고향에 돌아가 일하고 있습니다. G에게 이 도시는 “짠한 곳”입니다.
“광주가 광역시긴 하지만 공연이나 전시 같은 게 많은 것도 아니고, ‘노잼 도시’라고 할 정도로 할 게 없어. 사는 것도 팍팍하고, 잘난 것도 하나 없고, 그냥 짠해. 그런데 KIA 야구는 어디 내놔도 번듯해 보인다고 할까. 우리나라에서 전라도 여자인 거 티 내서 득이 되는 경우가 없는데, 야구장에서만큼은 환영받더라고. 광주에 몇 안되는 자랑거리 중 하나가 야구고, 우리 팀인 것 같아.”
한국의 유구한 호남 차별의 역사에 비할 바는 안 되겠지만 제가 창원을, 창원의 야구팀을 보면서 느끼는 것도 이와 비슷한 결인 것 같습니다. NC는 지역 특성상 팬들의 숫자가 적고,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흥행 참패 동맹(흥참동)’ 중 한 팀으로 분류되곤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왠지 억울하고 분한 마음입니다.
경남 창원NC파크에서 팬들이 스케치북을 들고 응원하고 있다. NC 다이노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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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는 너네나 재미없겠지. 우리는 지금 장난 아니거든?’
몇 달 전 엄마와 함께 창원NC파크에 갔을 때가 떠오릅니다. 길거리 빽빽하게 유니폼 입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도시, 생동감 넘치는 상권, 뜨거운 응원 열기와 함성, 그걸 보고 엄마는 즐거워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동네에 사람 이렇게 많은 거 오랜만에 보니까, 너무 기분 좋은 거 있제.”
이건 농도만 다를 뿐, 다른 구단의 팬들도 조금씩 느끼는 설렘일 겁니다. 곳곳에 연고지를 둔 야구가 ‘국민 스포츠’가 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할 테고요.
앞으로도 야구가 더 흥했으면 좋겠습니다. 남성 팬 위주에서 여성 팬으로 확대되고, 아저씨 팬 일색인 관중석이 어린 아이들과 학생들로 더 많이 채워지면 좋겠어요. 서울이 아닌 곳이 화제의 중심이 되고, 그 지역만의 또다른 길을 만들기도 하고, 야구장이 그런 꿈을 꾸는 사람들로 가득하면 좋겠습니다.
▼ 김정화 기자 clea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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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 기자 cl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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