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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사회에서 튕겨 나간 여자들'을 쓰는 '정년이' 작가 서이레 "쓰고 싶은 욕망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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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웹툰 '정년이' 스토리 작가 서이레 첫 산문집
'미안해 널 미워해'서 창작·삶의 여정 그려내
"다양한 여성, 불온한 존재들에 시선 머물러"
한국일보

서이레 작가가 스토리를 쓰고 나몬 작가가 그린 웹툰 '정년이'의 한 장면. 네이버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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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레’는 최근 가장 많이 호명되는 창작자다. 무관심 속에 쇠락한 한국 여성국극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웹툰으로 빛을 쪼인 그의 선구안은 이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정년이’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뿐인가. 그가 사랑한 여성국극은 국가유산진흥원 특별극의 형태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

이처럼 화려한 피날레에도 모든 끝은 필연적으로 아쉬움을 부른다. 드라마 ‘정년이’의 종영과 논쟁적인 결말로 허전한 이들에게 서 작가와 다시 수다를 떨 기회가 생겼다. 그의 첫 산문집 ‘미안해 널 미워해’를 통해서다.

그림 못 그리는 웹툰 작가?

한국일보

미안해 널 미워해·서이레 지음·마음산책·248쪽·1만6,800원


서 작가는 웹툰 ‘정년이’의 원작자이지만 만화가는 아니다. 그는 웹툰의 대본을 쓰는 스토리 작가다. 그래서 ‘미안해 널 미워해’의 시작에는 ‘그림을 못 그리는 웹툰 작가’라는 제목의 글이 놓였다. 어린 시절 교과서와 ”시험지, 책상, 연습장 가리지 않고 연필과 그릴 곳만 있으면” 그림을 그렸다는 서 작가는 말한다. “대부분 미소녀였고 대부분 정면을 보았으며 대부분 목까지만 그렸다. (…) 나는 미소녀들에게 팔다리를 그려주지 않은 대가─더 자연스러운 인체를 그리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대가─로 영원히 사람 그리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다.”

그래도 만화가 좋았다는 서 작가는 고등학교 만화 동아리에서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를 섭외했고, 스토리를 짜서 원고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진 못했으나 웹툰 스토리 작가 제안을 받았을 때 거절할 이유가 없도록 만들어줬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이 경험이 없었더라도 서 작가는 언제든, 어떻게든, 어떤 형태로든지 창작자가 됐을 것이다. 인터넷 소설의 시대에는 “뭐라도 올리고 싶은 마음에 다른 사람이 쓴 소설을 내가 쓴 것처럼 올렸다가 된통 욕만 얻어 먹었”지만 굴하지 않고 “댓글이 0개가 달리든 100개가 달리든” 팬픽을 쓴 사람, 고등학교 동아리 후배의 만화를 읽고 질투를 느낀 날 “새로운 만화 스토리를 공책 맨 뒤에 적기 시작”한 사람인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보이지 않는 건 쉽지 않았을 터다.

"작가는 사랑받지 못해도 쓰는 사람"

한국일보

서이레 작가. 마음산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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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곳곳에 ‘정년이’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대학생 때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떨어진 서 작가와 ‘강소주’를 마셔주는 건 웹툰의 등장인물 ‘부용’과 이름이 같은 친구다. 웹툰 ‘정년이’의 그림을 그린 나몬 작가와의 첫 만남과 관련 자료가 없어도 너무 없었던 여성국극을 이야기로 만들기까지의 여정도 담겼다. 여성국극에 대한 작품을 만든 미디어 아티스트를 무턱대고 찾아가 자료를 어디서 구하는지를 물었다가 선문답 같은 답변을 듣고도 끝내 자신만의 여성국극을 찾아낸 서 작가의 모습은 무대에서 자신만의 배역을 찾던 정년이와 겹친다.

“’정년이’는 여성 집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여성공동체의 화합과 연대의 이야기로 재맥락화했다”(송소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라는 평가처럼, 이 작품은 여자의, 여자들의, 여자들에 의한 것이다.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이 지금보다 더 환영받지 못하던 10년 전 데뷔작 ‘보에’에서부터 “사회에서 튕겨 나간 여자들”의 이야기를 쓴 서 작가다. “좋은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다채로운 사람을 그리게 된다”는 그의 시선은 사회에서 숨기고 싶어 하는 ‘불온하고 자격 없는’ 것으로 취급되는 존재로 향한다.

‘미안해 널 미워해’에서 서 작가는 창작자로서 자신과 자기 작품을 향한 애증의 얼굴을 보이기도 한다. “잘 만든 작품과 비교하면 내 작품은 어정쩡한 느낌”이라고 혹독하게 평가한다. “내 작품은 나이기도 하기에. 나는 내가 고통스럽다”는 그는, 그럼에도 돌아서면 “부족함도 질투도 연기처럼 사라지고 쓰고 싶은 욕망만 남는”다고 고백한다. 이런 욕망이 자신을 작가로서 살아가게 한다는 서 작가는 말한다. “어느새 나에게 작가란 사랑받지 못해도 쓰는 사람이 되었다. 이야기를 잘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커질수록 사랑받는 작가와는 멀어졌다. 그다지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언제 원했냐는 듯이.”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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