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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아인슈타인이 대한민국 입시를 치른다면…[이기진의 만만한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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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이기진 교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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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학입시가 시작되었다. 수시, 정시, 논술, 내신, 일반전형, 특수전형 등등 복잡하기만 한 현실의 대학입시 시스템은 대학교수인 나 역시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대학마다 다르고 매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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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학생은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의 학과를 정확히 선택하고, 대학은 그 전공에 적합한 인재를 선택하는 과정이 입시의 본질이다. 좋게 보면 매년 바뀌는 대학입시 시스템은 시대에 따라 진화해 나가는 단계라는 생각도 든다. 입시의 주체는 학생 자신이다. 학생은 입시 과정에서 앞으로 공부하고 싶은 학문의 세계를 선택하면 된다. 그런데 과연 우리 입학 시스템이 그에 적합한 시스템일까.

나는 40여 년 전 대학입시 제도인 예비고사 세대다. 전국의 고등학생이 일제히 예비고사를 치르고, 이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 학과에서 본고사를 치르면 대학 입학의 당락이 결정되었다. 일등부터 꼴등까지, 예비고사 성적 등수는 전국의 고등학생을 한 줄로 세웠다. 학생은 이 예비고사 성적으로 대학과 학과를 선택해야 했다. 예비고사 성적 하나가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는 단순, 무모한 시대였다. 어찌 보면 예비고사 성적으로 들어간 대학의 간판이 경쟁의 끝인 세대였다. 지금 생각하면 원시적인 시스템이라는 생각도 든다.

무한경쟁 속에 놓여 있는 과학, 예술, 스포츠, 경영의 세계를 생각해 볼 때, 과연 대학입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학생도 원하는 학문을 선택하기 어렵고, 대학도 그 전공에 딱 맞는 인재를 선발하기 어렵다면 누구를 위한 입시 난리 북새통인 것인지. 몇십 년이 지났는데도 우리가 여전히 원시적인 시스템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아인슈타인 이야기를 해보자. 아인슈타인은 만 16세에 스위스 연방 폴리테크니크 입학시험에 응시했는데, 처음에는 합격하지 못했다. 문학, 정치학, 동물학 등이 포함된 일반과목 시험 점수가 기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수를 해서 폴리테크니크에 입학했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입학시험에서 그는 수학 시험에서 최고점을 받았고, 지각하는 바람에 2시간짜리 물리학 시험을 1시간 동안 풀었지만 최고 점수를 받았다. 역사와 이탈리아어, 독일어는 상위권이었고, 프랑스어가 가장 낮은 점수였지만 최하위는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분명한 아인슈타인의 학업 동기였다. 그는 입학시험에 제출하는 입학지원서인 ‘나의 미래에 대한 계획’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운이 좋아 폴리테크니크에 합격한다면, 나는 4년 동안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과학 분야의 교사가 될 것이다. 기왕이면 이론 분야였으면 좋겠다. 추상적이고 수학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학문이 내 재능에 맞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과학 분야가 제공하는 독립성에 흥미를 느낀다”라고 썼다. 대학에 진학하려는 고등학생으로서 목표와 동기 그리고 자신을 평가하고 바라보는 아인슈타인의 통찰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예비고사 세대로서 내가 지금의 대한민국 입시를 치른다면 어떻게 될까. 아인슈타인은 또 어떻게 될까. 나는 분명 낙방이다. 아인슈타인은 모르겠다. 어쨌든 가슴을 졸이는 입시 철이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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