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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믿었기에 당한다…사기의 슬픈 역설[낙서일람 樂書一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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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는 어떻게 사기가 되는가

쑨중싱 지음 | 박소정 옮김

세종 | 280쪽 | 1만8500원

경향신문

자녀를 사칭해 돈을 보내달라는 스팸 문자부터 e메일 서버의 용량이 다 찼으니 업데이트를 하라는 계정 관리자 사칭 스팸 메일까지 크고 작은 사기가 횡행하는 시절이다. 사기 사건은 사건 기사 단골 소재다. 자주 일어나는 데다 피해자들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사회적 현상임에도 사기에 대한 사회학자들의 연구는 드물다. 대만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인 쑨중싱은 <신뢰는 어떻게 사기가 되는가>에서 사회학자들이 외면해온 ‘사기’를 학문적인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다.

쑨중싱은 공자와 한비자부터 아리스토텔레스와 마키아벨리, 칸트에 이르기까지 진실과 거짓에 대한 동서양의 논의를 두루 일별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사기가 없었던 적은 없다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명나라 말기에는 사기 근절을 목적으로 사기의 종류를 24가지로 구분한 책자도 있었다.

책에 소개된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훈련받은 거짓말 식별 전문가라도 거짓말을 완벽하게 탐지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의 유명 심리학자 폴 에크먼은 얼굴 표정을 보고 거짓말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을 연구한 <얼굴 움직임 부호화 시스템 안내서>라는 책을 쓰기도 했지만, 이 역시 완벽하지 않다. 인간은 43개 얼굴 근육을 사용해 무려 3000개에 달하는 표정을 지을 수 있다.

사기를 발본적으로 없앨 방법이 있을까. 저자에 따르면 사기라는 현상에는 한 가지 근본적인 역설이 존재한다. “지인 중에 누가 사기를 당했다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왜 그렇게 멍청해?’ 하지만 정말 멍청해서 속은 게 아니다. 그가 사람을 믿었기 때문이다. 만약 남을 믿지 않는다면 사기는 근절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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