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평화상 ‘니혼 히단쿄’ 초청 받은 피해자·후손 정원술·이태재씨
정원술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가운데)과 이태재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후손회 회장(오른쪽)이 20일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왼쪽에서 두번째)과 면담하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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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원폭 생존자 모임 니혼 히단쿄(원폭피해자단체협의회)가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지난달 11일 원폭 생존자 정원술씨(81)는 자기 일처럼 기뻤다고 했다. “원폭의 고통을 함께 겪고 핵무기 폐기를 위해 노력해 온 동료 피해자들이 상을 받았다니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1945년 8월 당시 두 살이던 정씨도 그곳에 있었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피해자 74만명 중 10만명이 조선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니혼 히단쿄가 노벨상 시상식에 정씨 등 한국인 피해자를 초대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인 정씨와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장 이태재씨(65)는 니혼 히단쿄가 시상식에 초대한 30명에 포함됐다. 한국인은 둘뿐이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은 “노벨 평화상 시상식에서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에 대해 증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다음달 7일 노르웨이로 출국한다.
79년 전 고통 후손들에게 대물림
해방 후 돌아온 조국에서도 차별대
통령 약속에도 실질 지원 없어
분명한 책임 물어야 되풀이 안 돼
핵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려야
정씨는 핵으로 인한 고통을 생생히 증언하고 싶다고 했다. “생전 부친이 말하길 원폭 피해자들이 열상을 못 이겨 강에 뛰어들면 그 강물이 시뻘건 핏물로 물들었다고 해요. 우리 친척도 그렇게 빠져 죽었다며 그렇게 고통스러워하셨어요. 난 두 살이었으니 기억은 못하지만 크면서 몸이 계속 안 좋았어요. 해방되고 고향 합천에 돌아와서도 원폭 피해자라는 낙인 때문에 차별받고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데요. 핵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려야 합니다.”
식민지배와 원폭투하라는 이중고를 겪은 한국인 피해자들은 오랜 세월 한국 정부의 무시까지 겪어야 했다. 한·미·일 정부 누구도 한국 원폭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거나 책임지지 않았다. 니혼 히단쿄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나왔을 때도 축전만 있었을 뿐 사죄는 없었다.
고통은 이씨와 같은 원폭 2세들에게 대물림됐다. 이씨는 “일본은 원폭 이후 전범 국가에서 피해국으로 변신해 한국인 원폭 피해자에 대해선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정부의 명확한 사죄도 없는데 한국 정부가 제3자 변제를 운운하며 일본 정부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 유감스럽다”면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한 정부 정책을 지적했다.
이들은 2·3세 후손들도 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피해자 지위를 인정해달라며 피해자 지원 특별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달 기준 한국인 원폭 피해자로 등록된 이 중 생존자는 1662명이다. 2·3세 등 후손은 3100여명으로 추정된다. 202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실태분석에 따르면 원폭 2세들은 갑상선 질환, 피부질환 등을 앓을 확률이 높지만 특별법상 피해자로 인정되지 않아 지원을 받지 못한다.
이씨는 “합천에 있는 원폭 피해자 복지회관의 수용인원이 110명인데 현재 60명만 수용하고 있다”며 “원폭 2세 중에서도 내년이면 80세인 사람들이 있는데 피해자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복지회관도 이용하지 못하고 아무런 돌봄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역대 한국 대통령으로선 최초로 히로시마에서 원폭 피해 동포를 만나고, 국내 원폭 피해자들과 추석 오찬을 가졌지만 변한 건 없다고 했다. 이씨는 “실질적인 지원은 하나도 없었다”며 “대통령의 생색내기로밖에 생각이 안 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 위험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노벨 평화상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 방법은 핵무기 참사를 기억하고 책임지는 것이라고 했다. 정씨는 “원폭을 투하한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분명한 보상을 하도록 책임을 물어야만 다른 국가들도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핵보유국들이 스스로 핵무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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