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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만물상] “공항 영접 그만 나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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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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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원수 공항 영접 행사의 시초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다. 그는 1940년대 카사블랑카·얄타 회담 등을 다녀온 뒤 공항·항구·기차역 등에서 귀국 행사를 열었다. 정부와 군 지휘부가 배웅 나오고 군악대 연주와 퍼레이드가 열렸다. 2차 세계대전 승전을 이끈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였다.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소련 흐루쇼프와 정상회담을 마치고 공항에서 환영식을 가졌다. 의회 인사들도 나왔다. 귀국 연설은 TV로 중계됐다.

▶일본은 천황 순방 때 총리와 내각, 정치권이 공항에 환송 나갔다. 총리 순방 땐 야당 대표가 배웅 나오기도 했다.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내각이 참석한 가운데 공항에서 군악대·의장대 행사를 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공항 영접 행사엔 3부 요인과 당·정·청 수뇌부가 총출동했다. 꽃다발 증정과 기자회견도 열렸다. 러시아와 중국 등 권위주의 국가의 공항 영접 행사는 훨씬 대규모였다. 지도자 개인 찬양 목적이 강했다. 북한 김정은은 2018년 트럼프 전 대통령과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평양 공항에서 환영 행사를 열었다. 많은 군중이 꽃다발을 들고 김정은을 칭송했다.

▶공항 영접은 출세의 기회였다.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닉슨 대통령 순방 때마다 공항에서 외교 성과와 현안에 대한 현장 브리핑을 했다. ‘항상 준비된 충성스러운 참모’로 자리매김했다. 애치슨 전 국무장관은 트루먼 대통령이 의회 선거 패배 후 워싱턴으로 돌아왔을 때 혼자 기차역으로 마중 나갔다. 이후 승승장구하며 4년간 안보 정책을 총지휘했다. 박정희 정부 때 유정회 의원들은 눈도장을 찍기 위해 앞다퉈 공항에 나갔다. 요직에 발탁된 이들도 있었다.

▶권력 갈등도 야기했다. 김영삼 정부 때 민자당 지도부가 대통령 귀국 영접에 나가지 않았다. 공천 갈등으로 비화하며 지도부 교체설까지 나왔다. 박근혜 정부 때도 여당 지도부의 공항 행사 불참이 불화설로 이어졌다. 김무성 전 대표는 단 3초간 대통령과 인사하기 위해 공항에 나갔다. 이명박·노무현 정부 땐 청와대와 갈등을 빚던 여당 지도부가 공항 영접을 계기로 관계 회복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국민의힘 지도부에 “수고스럽게 공항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동안 한동훈 대표가 공항 영접에 나가지 않을 때마다 불화설이 제기됐는데 더이상 소모적 논란을 벌이지 말자는 취지일 것이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들에선 공항 영접이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도 그럴 때가 됐다.

[배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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