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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순대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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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방송작가의 질문을 받았다. 순대의 역사가 어떻게 되느냐고. 잘 모른다고 답했다.

아직 우리나라에 순대(국) 연구자는 없는 것 같다. 옛날 신문 자료를 뒤져도 아주 적다. 심지어 순대의 변천사를 더듬어볼 기록조차 없다. 언제부터 누가 당면을 넣었는지, 부산 돼지국밥은 이북 피란민이 전파한 것인지, 들깨는 누가 넣었는지, 서울의 순댓국은 전라도식인지 이북식인지 충청도식인지 아니면 그저 서울식인지 모른다. 다만 돼지 사육이 본격화된 1970년대 이후 도시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순대는 잔치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기를 도살하는 건 제사나 잔치 때다. 유목을 하는 북방 민족이 전달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순대는 저장 식품이다. 한국은 말린 순대를 먹지 않지만, 서양에는 살라미가 있고, 중국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순대는 돼지나 기타 짐승을 잡아서 그걸 알뜰하게 먹으려는 의도에서 나온 음식이다. 피와 내장, 그리고 부스러기 등을 ‘제 몸뚱이 중에 그릇 역할을 할 수 있는’ 창자에 넣어서 만든다. 그릇을 따로 준비할 필요도 없고, 그 그릇 역할을 한 창자까지 먹을 수 있다. 게다가 익히거나 숙성되는 과정에서 더 맛있어진다.

순대는 실크로드의 영향도 받았다. 후추와 여러 향신료를 넣어 만드는 방식은 상인들이 전달했고, 전쟁도 매우 중요한 이동 경로가 되었다. 순대로 겨울을 날 수 있었고, 전투식량이 되었다. 북방 기마민족들, 고원지대의 민족들이 중세에 유럽을 공격하는 데 아주 훌륭한 몫을 했다. 물론 그 순대는 돼지일 수도, 소나 양이나 사슴일 수도 있다.

우리 현대의 순대는 아마도 당면을 만나서 더 싸게 팔릴 수 있었다. 당면을 만드는 과정에서 부스러기가 생기고, 그것을 싸게 사서 순대에다 넣으면 양이 늘었다(정말로 최초의 개발자를 알고 싶다). 순대는 북방식이었으니 철저하게 고기와 비계, 피로 만들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농경민족의 영향으로 변한다. 곡물을 넣고, 한국에서 가장 흔한 우거지가 들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배추를 워낙 많이 먹으니 그 부산물이 순대 속으로 침투한 셈이다.

순대에 곁들이는 장으로 고향을 알아보는 것도 있다. 쌈장이냐 초장이냐 아니면 그냥 소금(고춧가루 소금도)이나 간장을 찍어먹느냐를 보고 출신 지역을 알 수 있다. 대체로 남도의 우도(경상도)는 쌈장이고 좌도(호남)는 초장이라고 한다. 기호지방은 소금이 대세다. 제주는 간장을 찍기도 한다. 순댓국을 먹을 때 나오는 새우젓을 찍어먹는 경우는 없는 듯하다. 아마도 가장 싼 패스트푸드인 순대를 팔면서 새우젓을 내기엔 너무 비싼 것 아니었을까.

순대는 원래 고급이었다. 재료 자체가 동물성이므로 비싸고 귀하다. 산업화시대에 와서 가장 싼 음식이 되었다. 그러더니 요새는 순대 값이 오른다. 손이 많이 들어가면 값이 오르는 거다. 그 일을 할 사람도 없어서 외국인들 중 순대 기술자가 많다고 한다. 어즈버.

경향신문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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